회사생활
하다 보면 는다
퇴근토끼
2020. 10. 28. 16:53
일본에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팀 내에서 내성적인 내 성격에 대한 일종의 농담이 생겼다. 나는 같은 테이블에 4명 이상 있으면 입을 닫는다는. 꽤 정확한 관찰에 근거한 이야기로 본인이 인정한 농담이다. 좋게 해석하면 나는 잘 듣는 사람이라는 건데 그건 절반의 진실이고, 그룹이 커지면 커질수록 가늠하기 어려운 말하는 타이밍,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 등등 때문에 머릿수가 어느 정도 되어 내가 굳이 열심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면 방관자적 위치를 지킨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내게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이라도 할라치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대본을 미리 준비해 거의 외우다시피 준비해야 했고, 본방 때는 이미 혼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대본대로 제대로 말했는지 뭔지도 기억 못 하고 그저 끝나면 안도의 한숨을 쉴 뿐이었다. 첫 매니저가 선배 팀원들을 동원해 나를 위한 ‘hot seat’ 세션을 마련해 그야말로 전원이 나를 까다로운 질문으로 들들 볶는 식으로 코칭을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당일 갑자기 발표 주제를 정해 예정에 없던 발표를 하기도 하고, 외부 손님을 모신 자리에서 사회를 맡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걸 즐기기도 한다. 모두 오늘 있었던 일인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감개무량하다.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자세히 쓸 기회가 있겠지만, 하다 보면 는다.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