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창고

크리스마스 기분

퇴근토끼 2020. 12. 8. 15:59

추수감사절이 끝나자마자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서 집을 꾸몄다. 탁상용 미니 트리, 산타옷을 입은 인형들, 벽에 거는 산타 장식 등등. 스튜디오 살 때는 이 정도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팍팍 났는데 이번엔 별로 느낌이 안 나길래 처음엔 공간이 커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 후로 회사 동료가 손수 만들어 보내준 크리스마스 카드도 받았고, 교회 청년부의 시크릿 산타 이벤트 공지 메일도 받았고, 뉴스를 틀면 때 맞춰 선물을 받아보려면 크리스마스 온라인 쇼핑은 미리미리 하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크리스마스스러운 일들이 이래저래 있는데 여전히 기분이 안 난다. 실감이 안 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3월부터 마비된 시간 감각에 벌써 12월이라는 게 믿겨지지도 않고 전에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몇 차원은 더 위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곳까지 이동해버린 것만 같다. ‘악몽 같은 2020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말을 곧잘 듣는데 우리가 지금 꾸는 악몽은 2020년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2020년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그렇게 꿈꿀 뿐.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올 2020년의 끝을 바라보며 안 좋은 일은 2020년에 다 욱여넣고 2021년에는 새 출발을 하고 싶은 부질없는 마음. 종료 버튼도 리셋 버튼도 없이 시간은 그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