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창고

한밤의 색소폰

퇴근토끼 2020. 12. 12. 16:28

금요일 밤 11시를 넘긴 시각. 소파에 기대어 따뜻하게 데워진 전기담요를 덮고 창밖의 빗소리와 차가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시작해 크리스마스 캐럴 메들리가 이어진다. 한두 블록 내에서 들리는 소리인 것 같아 블라인드를 내리고 빼꼼 창 밖을 내다보는데 어두워서 어디서 누가 연주하는 것인지 보이지는 않는다. 숙련된 연주자는 아닌 듯 한 두 번 삑사리도 나고 음정이 틀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정겹게 들린다. 이 시간에 밖에서 색소폰 연주라니 사실은 신고감이지만 어째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 좋은 밤이다. 상실감 가득한 2020년, 시간 감각도 잃은 채 흘러 흘러 12월을 맞이했는데 덕분에 이제야 크리스마스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