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에러
몇 달 전부터 폰 카메라에 이상한 에러가 생겼다. 카메라 앱을 열었을 때 오른쪽 아래에 작게 표시되는 최근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메뉴를 터치해서 가장 최근 사진부터 왼쪽으로 스와이프 하다 보면 서너 장 넘어갔을 때 항상 같은 사진이 표시되고 더 이상 넘어가질 않는다. 9년 전 가을에 엄마랑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우리가 사랑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 중 하나인 미라벨 정원의 계단에서 엄마가 찍어준 내가 유니콘상에 기대어 서서 웃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 관리는 어차피 포토앱으로 하는 거고 카메라 앱에서 당장 찍은 사진 확인하는 것 이외에 그 메뉴를 쓸 일이 많지 않아서 실질적인 피해는 없는 에러지만 어쩌다가 딱 그 사진이 걸렸나 싶다. 그 여행은 졸업 여행이었고, 첫 유럽 여행인 데다 일본 유학 전 엄마랑 단둘이 갔던 부산 여행 이후로 함께 한 여행이라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서 그야말로 그 사진 한 장으로 추억이 방울방울. 그때만 해도 나는 '다 컸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완전 아기네. 예나 지금이나 볼이 통통한 건 마찬가진데 지금은 그냥 살찐 것 같고 그때는 앳되게 보인다. 요즘 찍은 사진을 9년 후에 다시 보면 그때도 비슷한 감상이려나. 왼쪽으로 스와이프 하다 이 사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스와이프를 하면 사진을 주문하겠냐는 구글 포토앱과 연동된 조그만 메뉴가 아래에 뜨는데 만약 이 사진이 걸린 게 에러가 아니라 (그럴 리 없지만) 어떤 알고리즘으로 추억 돋는 사진을 골라서 보여주는 거라면 추억팔이 대단한데~하는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 드는 추억에 젖은 일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