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20. 노력으로 삶을 바꾼 경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실제 문제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하다. 아직 문제 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이후를 대비해 정보수집 중인 것뿐이라 윗사람들에게 상담할 단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윗사람과 회의부터 잡았다고 하는 건 도대체 뭔지. 문제 해결과는 상관없이 (아직 '문제'가 없으니까!) 그룹을 '대표'해서 윗사람과 상담하고 본인을 어필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데다 오히려 없던 문제를 만든 셈이라 그저 골 때릴 뿐. 처음 그 이메일을 보고는 빡쳐서 일단 접어두었다가, 지금 단계에서는 윗사람과 상담해봤자 긁어 부스럼인 것 같다, 그 회의를 굳이 강행하겠다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정보 수집을 해보던지라고 (물론 여러 번의 심호흡 후, 훨씬 나이스 하게 썼다) 회신. 더 골 때리는 건 이게 주 업무도 아니고 자원봉사로 하는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자원봉사니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왜 자원봉사 프로젝트에서까지 나 잘났다고 자기 어필하려는 사람들과 부때껴야하는 건지.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심호흡. 질문 목록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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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0. 노력으로 삶을 바꾼 경험이 있나요? 그 비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것 (Taking initiatives)
졸업 후 미국계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도 나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았던 거다. 학교에서 내내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덕에 회사에도 주입식 교육을 기대했는데, 개뿔! 신입사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3일간의 (친목 도모) 워크샵, 대부분이 셀프 스터디인 2주간의 업무 트레이닝을 마치고 일을 하라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내 첫 팀은 팀원 각자가 담당 시장이 있어서 하는 업무가 유사하기는 해도 각 시장별로 실제 적용은 차이가 커서 옆에 있는 선배가 하는 걸 보고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내 시장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시작. 거기까지만 하면 그야말로 필요 최소한을 하는 것뿐이다. 정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서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만, 이거야말로 이 회사를 다니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커리어 개발도 네트워킹도 아무도 날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주도해서 나를 챙겨야 한다. 삶의 행복도 마찬가지.
한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힘들었을 때 상명하복식의 한국 회사(주의: 한국 회사를 다닌 적이 없어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내지는 매우 왜곡된 편견일 수도 있음)에 다니면 주입식 교육의 승자답게 승승장구할 텐데라는 망상을 하며 나에게 그냥 뭘 하면 좋을지 알려줘~~~라고 윗사람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위에서 뭐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제일 싫다...
- 자기 사랑 (Self-love)
오랜 시간 바닥을 쳤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줬던 건 다름아닌 유튜브 데이트 코치 비디오!! 한동안 많이 본 건 이 사람과 저 사람 비디오. (어쩌다보니 둘 다 매튜네) 많은 여성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이런 나라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든지 '최대한 잘해줘서 사랑을 받을 거야' 등등의 태도를 경계하고 '난 소중하니까'를 깨우쳐주는 주옥같은 메시지가 가득한 채널들이니 연애 위기뿐만 아니라 자존감의 위기를 겪고 있는 언니 동생들에게 권한다. 몇 개 보다 보면 똑같은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자존감 회복은 한 번 좋은 말씀 들었다고 하루아침에 뿅 되는 게 아니니 비슷비슷해 보여도 계속 들어서 자기세뇌 수준으로 가는 걸 권장. 한참 삽질하던 작년 여름에 피크로 열심히 듣다가 가을쯤에 이미 졸업하고 안 들은 지 꽤 되었다. 참고로 유튜브 데이트 코치 비디오를 보다 보면 유튜브 밖의 홈페이지에만 제공되는 특별 영상을 보러 오라고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건 다 몇십에서 몇백만 원씩 하는 코칭 프로그램이나 워크숍 선전이니 주의를. (특별 영상을 보고 결제를 거의 누를 뻔했던 1인) 돈 내고 코칭 안 받아도 내 자존감은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짝꿍이 없는 건 별론으로... (쿨럭)
- 자기 표현, 자기주장 (Being assertive)
이거야 말로 현재진행형. 원래부터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 아니라 토론을 할 때도 주로 들으면서 관망하는 편이었는데 미국 회사는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았다고 인식되고 존재 자체가 (최소한 그 회의에서는) 의미가 없어지는 문화라 계속 듣고만 있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순토종 한국인으로서 불꽃 튀는 영어 토론 속에서 논의의 흐름을 따라잡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경우가 많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말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내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만난 멘토와 지난주 금요일에 첫 미팅을 하면서 앞으로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 구두 커뮤니케이션이고, 이런 부분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내 멘토도 영어 원어민이 아니라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해주고 몇 가지 팁을 알려줬다. 일부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행하고 있던 거지만 멘토가 정말 깔끔하게 한 방에 정리해줘서 도움이 됐다. 참고로 여기에 공유.
- 회의 중에 적어도 2회 발언한다는 목표를 정한다.
- 회의 전에 미리 안건을 확인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 2회 발언할 지 준비한다.
- 의견을 개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전체 논의에 도움이 될만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다.
- 의견 개진, 질문이 어렵다면 회의 종료 전 논의 사항을 요약해서 전달하고 이후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다음 회의가 필요한지, 언제 다시 만날지 등등을 정하는 것도 그 회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공헌'이니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어쩌다보니 완전 업무 이야기로 흘렀는데 이건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마음 속에 담아만 두기보다는 표현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결국 말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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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다 원동력은 '이대로 살긴 너무 힘들다~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바꿔야!'라는 고통 회피 본능. 내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밖에 없으니 매일매일 조금씩 노력할 수밖에. 오늘도 꿈틀꿈틀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