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어제 아침에 깨자마자 갑자기 펠로톤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자택 대기가 장기화되면서 주변에서 펠로톤 붐이 불었을 때 나도 부족한 운동량을 보충하기 위해 실내 자전거를 하나 살까 고민하다가 거실에 늘 요가 매트를 깔아 둬도 요가를 안 하는 상황에서 운동 기구를 새로 들여봤자 금방 빨래걸이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비판으로 그만뒀었는데. 기억나지도 않는 꿈속에서 뭐라도 본 건지 깨자마자 침대에 누운 채로 폰으로 검색에 들어갔다. 기본형 본체만 2천 불 가까이하는 데다 멤버십 클래스를 듣기 위해 매달 39불을 지불해야 하니 꽤 큰 투자다. 후기를 읽어보니 클래스에 대한 칭찬이나 다른 사용자들과 경쟁하는 시스템에서 오는 모티베이션 등등에 대해 좋은 이야기가 많은데 티브이를 보며 느긋하게 내 맘대로 탈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리더보드에서 더 위로 올라가려고 더 분발해서 탄다고? 그건 내가 아냐. 기본적으로 경쟁심이 없는 건 아닌데 타고난 몸치에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몸 쓰는 분야는 내 경쟁심이 불타오르지 않는다. 후기를 따라가다 보니 펠로톤 대신 저렴이 실내 자전거를 사서 유튜브의 사이클링 강좌를 듣는 것을 추천하는 사람이 있어 나중에라도 클래스를 시도해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어 결국 2백 불짜리 접이식 실내 자전거를 샀다. 실내 사이클링용으로 실제 풍경 영상들도 유튜브에 많이 있다고 하고 VR 헤드셋을 쓰고 보면 밖에서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코멘트도 있어서 예전에 인도네시아 사는 친구가 출시되자마자 미국에서 공수해서 대만족이라며 오큘러스 퀘스트 2를 강력 추천했던 게 새삼 떠올랐다. 팔랑팔랑 팔랑귀. 최근에 수면 전문가의 추천으로 부족한 햇빛을 보충하기 위해 라이트 박스를 사서 햇빛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내가 방콕 생활 때문에 라이트 박스를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참 뭣했는데 바로 코앞에 자전거 코스가 있는 공원이 있음에도 일반 자전거가 아니라 실내 자전거를 사는 것도 뭣하고, 바깥 풍경을 가상현실로 볼까 생각하는 건 또 다른 레벨이다.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 속에 있는 듯. 게이머도 아닌데 VR 헤드셋에까지 손을 뻗히는 건 뭔가 지는 것 같아서 실내 자전거에서 멈추기로 했다. 이러고 있다가 얼마 안 지나서 VR 헤드셋 체험기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실내 자전거가 오면 뽈뽈거리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던 그 시절 운동량 정도만 회복해도 성공이라고, 넷플릭스 마이 리스트에 등록된 수많은, 그래서 어째 이제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볼거리들을 페달을 돌리면서 소화할 기회라고 느긋하게 설정한 나의 피트니스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