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창고
밤의 소리
퇴근토끼
2021. 2. 23. 17:25
밤이 되어 어둠이 깔리면 청각이 더 예민해진다. 집안에서는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윗집에 또 손님이 온 건지 꺄르륵 대는 소리도 더 육중하게 웅웅 댄다. 창밖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거의 매일같이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집 앞 차도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오늘도 어김없다. 언덕길이라 경사진 아스팔트 위를 긁으면서 내려가는 그 소리는 차가 오가는 소리 속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고막을 때린다. 도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하면서도 뭔지 모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와일드한 상상의 즐거움이 있어 아직 탐정 모드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스케이트 보드 소리'가 들려올 때 자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잭 스켈링턴 풍의 저승사자가 영혼을 수거하느라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다. 코로나 사망자수가 50만명이 넘은 미국 사정, 최근 들어 고담 시티에 버금가는 분위기의 샌프란 사정이 무의식중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얼굴이 잭 스켈링턴이라는 데서부터 장르는 일반 호러라기보다는 코믹 다크 판타지에 가깝다고 할까. 이 상상을 더 펼쳤을 때 공포보다는 블랙 유머라도 좋으니 웃음이 더 섞여있었으면 좋겠다고 감상에 젖은 2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밤. (정신차려! 네 밤만 자면 다시 3 연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