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밖으로
지난 석 달 사이에 우리 팀에 들어온 동료 두 명이 샌프란 주민인 데다 심지어 가까운 동네에 살아서 셋 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겠다 한 번 만나기로 했다. 동네에서 유명한 빵집에서 만나 점심을 테이크 아웃해서 근처 공원에서 놀기로 한 건데 맨날 화면으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실제로 만나자니 그냥 여자애들끼리 만나는 건데 옷차림도 첫 데이트 나가는 마냥 신경 쓰고 (꾸안꾸) 나름 긴장했다. 빵집까지 걸어가다 교차로에서 내 앞에 서있는 긴 금발머리에 키가 자그마한 여자의 얼굴을 언뜻 봤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 밖에 안 보이지만 오늘 만나기로 한 M인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에 '헤이 M!'하고 불렀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어... 노.' 이렇게 민망할 데가. 쏴리를 외치고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이놈의 신호는 바뀌지를 않는다. 그러자 여자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홱 돌더니 가버린다. 멋쩍은 짓을 한 건 난데 그쪽에서 자리를 피하니 괜히 더 미안하다. 그런 해프닝을 뒤로하고 빵집에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반대 방향에서 마스크를 한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내가 버디로 붙어있는 R이다. 매주 1:1 회의로 얼굴을 보는 사이인 데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허그를 할 태세로 들어가서 이번에는 성공. 놀랐던 건 화면으로 본 인상으로 키가 작은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랑 비슷한 키 내지는 약간 큰 것 같다. 둘이서 실제로 만난 반가움을 토로하고 있는데 시야에 긴 금발머리의 예쁘장한 얼굴(역시 마스크 착용)이 들어왔다. 먼저 있었던 일 때문에 자신 있게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는데 M이 맞다. 이 친구야말로 작은 동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R과 마찬가지로 나랑 같은 눈높이다. 화면 상의 축척 환산을 완전 잘못하고 있었네. 다 같이 손을 맞잡고 기쁨의 둥글게 둥글게까지는 아니어도 드디어 이렇게 만났다는 반가움에 처음 만난 어색함 따위 없이 금세 왁하고 수다를 이어갔다. 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쩌다 보니 왕보스의 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큰 키에 대해 말했는데 둘 다 왕보스가 키가 큰지 몰랐단다. 190 센티미터에 육박하는 키에 덩치도 만만찮아서 (조엘 킨나만 같은 느낌) 화면 상으로도 당연히 그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실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도 그저 화면 속의 작은 사람일 뿐인 것이었다. 차마 나도 너네들이 키가 훨씬 더 작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은 못 하고, 화면 속에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신선함에 대해 혼자 속으로 감탄할 뿐이었다. 나는 딱 중간 키인데 어째 주변에 나보다 작거나 큰 사람밖에 없다가 이렇게 눈높이가 같은 친구들을 만나서, 직속팀에서 왕보스를 제외하고는 샌프란에서 통근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두 명이나 동네 주민을 만나서, 카페에 와이파이 따위 없고 그 비싼 집세를 내도 집에 세탁기 따위 안 딸려있는 게 당연한 샌프란,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도시 샌프란에 대한 수다를 늘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마냥 반갑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면 밖 세상은 역시 좋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