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자답

Q6. 중고딩 시절 좋아했던 것?

퇴근토끼 2020. 7. 14. 15:00

월요병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오늘은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집중해서 빡시게 보람차게 일했다. 호르몬 때문에 컨디션은 계속 별로인데 머리가 멍한 와중에 오늘도 애썼다, 장하다 나! 질문 목록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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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어제는 (머나먼) 어린 시절을 살폈구요. 오늘은 중/고딩 시절을 생각해 봐요. 어제 보단 쉽죠? 자아가 켜켜이 쌓이던 시기. 나는 누구를/무엇을 좋아했나요? 왜 좋았나요?

 

십 대에 세기말을 경험한 덕에 중2병을 제대로 앓았다. 다만 나는 범생이였기에 (요즘에도 이 말을 쓰나??) 티 안 나게 조용히 앓았던 편이지. 

 

- 클램프 X: 세기말x중2병 폭발! 무수한 떡밥을 남겨두고 연재 중단한 애증의 작품.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는 도쿄 바빌론과의 연장선상에서 스바루. 스바루랑 세이시로의 얽히고설킨 애증의 관계는... 새삼 맘 아프네ㅠㅠ

 

- 에반게리온: 처음 에반게리온을 접했을 때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였고, 파더콤이 심했기 때문에 (참고로 우리 아빠는 이카리 겐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냥하고 좋은 아빠임. 바빠서 함께 한 시간이 적었을 뿐) 신지한테 제대로 감정 이입했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멍멍이를 신지라 명명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기다리고 있다...! 

 

-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고등학교 때 무려 방과 후 활동 '논술반' 선생님이 소개해주셔서 봤던 애니.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했던 허영덩어리 유키노에게 무한 감정이입을 하며 봤었다. 입학시험 필기성적은 같은데 같은 계열 사립중학교에서 올라왔던 아이에게 밀려 억울하게 고교 데뷔에 실패했던 사정도 있어 초반 유키노와 아리마의 경쟁구도도 흥미진진했다. 다만 난 여고에 다녔기 때문에 내게는 경쟁 끝에 사랑을 얻은 유키노와 같은 드라마는 없었다는 게 함정. 

 

- 왕가위: 왕가위 영화에 빠져 있었던 게 (그래봤자 타락천사, 중경삼림 딱 두 편 봤다. 등급 상 보면 안 되는 연령이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면에서는 개방적이셨지) 내 중2병의 절정이었던 것 같다. 무슨 내용인지 알듯 말 듯 애당초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한 영화를 있어 보이는 스타일이 너무 좋아서 왕가위 감독을 숭상했었고,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 당시의 나도 몽상가이면서 현실주의자라서 좀 더 현실적인 '의사'라는 장래희망도 공존했다. 

 

- 프리미어: 용돈을 아껴서 영화잡지 프리미어를 매달 사서 봤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우마 서먼이 표지로 나왔던 호.

 

- 자우림: CDP(!)로 자우림 CD를 무한반복해서 들으며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윤아 언니를 무척 좋아하고 동경했었다. 

 

- 언어영역 모의고사 위로 넘기는 문제집: 내 사랑 언어영역! 국어, 영어, 불어, 언어 관련 모든 과목이 가장 자신 있고 많이 사랑해서 (내 뇌 구조가 문과라는 신호가 그렇게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2까지는 의대 지망으로 이과였다) 고3 때 위로 넘기는 형태로 제본된 언어영역 모의고사 문제집을 취미 생활하듯 늘 붙들고 있었지. 지문으로 나오는 내용이 재밌다고 느꼈던 것 같다. 점수가 잘 나오는 게 즐거웠고. 

 

- 불어 선생님: 고1 때 총각 불어 선생님을 짝사랑했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제2외국어 선택이 불어 밖에 없었기 때문에 괜한 반항심에 처음에는 불어를 공부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청명한 목소리로 불어 알파벳송(아베쎄데으에프제♬)을 가르쳐주셨을 때부터 불어 선생님과 불어에 빠져들었다.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건 많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