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이메일

지난 한 주 사이에 굿바이 이메일을 연속으로 두 통이나 받았다. 인사고과 후가 이동이 가장 많은 시기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 했고, 4년 넘게 같은 팀에 있으면서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지만, 역시 굿바이 이메일을 받을 때 드는 아쉬움에는 변함이 없다. 굿바이 이메일에 답장을 쓸 때는 항상 십 분 정도는 확보한 후, 심호흡 한 번 하고 자판을 쳐 내려간다. 구태의연한 그동안 고마웠다 앞으로 건승을 빈다라는 말 외에 떠나는 이와의 개인적인 기억에 대해 짧게나마 덧붙이려고 한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감상은 제쳐두고, 굿바이 이메일은 내게 흥미로운 대상이다. 어떤 제목과 내용으로 안녕을 고하는지, 그리고 수신인이 누구이며 수신 설정이 직접 수신인지 참조인지 숨은 참조인지 등등에서 발신인의 일면을 엿보는 느낌이다.

 

기억에 남는 굿바이 이메일 제목 중 하나는 ‘So long farewell auf wiedersehen goodbye’다. 내가 사운드 오브 뮤직 팬이라서 '너도 팬이었니?!'하는 반가운 마음, 그리고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되는 폰 트랩가 아이들의 합창이 이별의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지금 팀은 자동차 관련 제품 담당이라 굿바이 이메일 제목도 ‘Changing lanes’, ‘Taking the next exit’, ‘Thanks for the ride’처럼 운전과 관련한 테마가 많다. 이 팀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제목의 이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는 신선했는데 얼마지 않아 돌려쓰는 제목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누군가 참신한 제목으로 굿바이 이메일을 보내온다면 그 사람을 다시 볼 것 같다. 나는 지난 8년간 포지션 이동은 여러 번 있었지만 팀 이동은 4년 전 미국으로 건너올 때 한 번 뿐이라서 굿바이 이메일을 보낸 경험도 역시 한 번뿐인데 그때 나는 '돌고 돌아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잠시만 안녕'의 느낌으로 ‘Thank you & see you again’이라는 꽤 직설적인 제목을 선택했다. 지금 팀을 떠날 예정은 아직 없지만 굿바이 이메일을 쓰는 그날이 온다면 운전 관련 테마로 센스있는 제목을 선택하겠다는 쓸데없는 야심이 있다. 장롱면허 주제에.

 

본문은 그동안 즐거웠다, 많이 배웠다, 모두 고맙다라는 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떠나는 이와 팀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들 (제품 출시, 대외 이벤트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경우를 좋아한다. 내가 그때 함께 했든 아니든 그 에피소드는 떠나는 이의 기록을 통해 역사로 남는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적어도 내 기억에는 남는다. 그 사람의 이미지와 함께. 사라질 때까지.

 

수신인과 수신 설정도 흥미로운 게 전체 팀과 관련 부서 사람들을 다 수신인에 넣어 이별을 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접 속해있는 작은 그룹에만 고하는 사람, 전원 숨은 참조로 고하는 사람 등등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아예 소리 소문 없이 떠나는 사람은 별론으로. 나는 전원 숨은 참조로 이별을 고하는 타입(?)이다. 모두 수신인에 넣어 보낼 경우에 전원 회신으로 답장을 받는 게 쑥스럽다. 그리고 살짝 나만 볼 거니까 답장하는 사람들이 내 귀에 소곤대듯 소소하게나마 진심을 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전원 회신의 경우가 주목도가 더 높고 전원 숨은 참조의 경우 이메일의 홍수 속에 묻혀 읽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보내는 이메일에 평소 주목해온 사람들에게는 닿겠지, 아님 말고 하는 안일한 마음.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는 괜히 동질감을 느낀다.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굿바이 이메일이 주는 아쉬움에 뭐라도 좋은 걸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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