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에 해당되는 글 5건
절찬 languishing 중일 때 (현재진행형이긴 한데 요즘은 languishing 하기를 languishing 하는 중; 뭐라는 거야) 친구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The Daily Stoic이라는 하루 한 페이지 스토아 철학자의 인용구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명상책을 선물해줘서 매일 읽고 있는데 오늘의 주제가 'Have to' (해야 해: 요즘 열심히 듣는 중. 우영이 GJ!)에서 'Get to' (할 수 있어)로의 전환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받아들여서 어떤 일도 내 의지에 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용구와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건 부담되는 일이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특권'이며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라는 코멘트가 붙어있었다. 뭐든지 목록을 만드는 게 취미라 하루에도 몇 번씩 끄적이고 들여다보는 게 투두 리스트(To Do List)지만 '해야 해'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가끔 투두 리스트를 폭파하고 싶은 충동도 들고 실제로 감당 못할 정도로 리스트가 길어지면 자기 파산 선고를 해버리는 일도 종종 있는 내게 겟-투두 리스트(Get To Do List)라는 발상의 전환은 획기적이다. 아침에 이걸 읽고 오호라~하는 기분으로 요가를 갔는데 요가 선생님이 본인의 최애시라며 인용한 시가 somewhere i have never travelled,gladly beyond라는 사랑 노래였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기꺼이 가보겠다는 마음. 우리는 계속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무슨 일이 닥치든 나의 의지로 새로운 모험에 몸을 맡기는 것. 그렇게 이어졌다. 옴 샨티 샨티 샨티(Om Shanti Shanti Shanti)! 나의 '일상 복귀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로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모험 시리즈'를 시작한다. 굳이 매일 매일 그렇게 태그를 붙이지는 않겠지만 매일 매일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겟-투두 리스트를 손에 들고.
"God makes no mistake." 이 한 마디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옛날 예배당이라 유난히 높은 천장 아래 열기가 감도는 스튜디오에 팬데믹 이전처럼 빽빽하게 놓인 요가 매트 위에서 한 시간 넘게 음악과 선생님의 리드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동안 서서히 쌓여온 모두의 마음속 어떤 감정을 한 순간에 팍 터뜨리려고 의도하기라도 한 듯 오늘은 이 한 마디를 꼭 나누고 싶었다며 선생님이 던진 한 마디.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는데 스피커에서 Lean on Me가 흘러나왔다. 사바사나 상태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는데 스튜디오 안에 울리는 화음이 감동적이었다. 이번 5 연휴의 테마는 치유. 좋은 시작이다.
늘 껄끄럽게 여겼던 선배 A가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공지 이메일을 월요일 아침에 왕보스가 보내왔다. 실제 이동은 2월 중순이라고 하니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라는 것도 있지만 그간의 역사(?)도 있고 바로 얼마 전에도 불편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평소 굿바이 이메일을 받을 때와는 좀 다른 묘한 기분이었다. 일단 서운한 기분은 전무하고, 4년 넘게 이 팀에 있었던 나보다 더 오랫동안 있었던 사람이고 담당 업무나 직급 상 워낙 팀의 핵심 인물이었던 데다 최근 본인의 팀 세력을 키우는 단계였기 때문에 이 팀에서 뼈를 묻겠거니 했던 차라 솔직히 많이 놀랐다. 우리 팀만 한 팀이 없다고 생각해서 당분간 머무를 생각이기 때문에 A와의 불편했던 관계를 생각하면 A가 떠나서 잘 됐다 기쁘다까지는 아니어도 이제 부대낄 일이 없겠구나 해서 안심했다.
그 발표 이후 오늘 처음으로 업무상 A와 1:1을 했다. 어젯밤 야근까지 해가며 만든 자료를 회의 전에 미리 보냈더니 아니나 다를까 문서에 고춧가루 팍팍 뿌린 코멘트가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추가 맥락이 있는데 다 읽기도 전에 앞부분부터 잘못된 것을 찾으려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듯한 느낌의 코멘트를 달기 시작하는 게 거슬려서 회의 시작 전부터 언짢아졌다. 다행히 회의 직전에 A가 회의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사정이 생겨서 회의가 한 시간 이상 미뤄진 덕에 납득이 가는 피드백에 대해서는 문서를 업데이트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도 프로세스 해서 오픈된 마음으로 A와의 회의에 임했다. 이 달 내내 점심시간에 듣고 있는 명상 수업에서 타인을 타이틀이나 유한한 물질세계의 존재로 보지 말고 영혼 대 영혼으로 대하는 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던 터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걸 실험할 좋은 기회였다.
비즈니스를 논하기 전에 먼저 팀 이동 뉴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나보다 더 오래 우리 팀에 있었고 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동해서 놀랐고, 특히 이동하는 팀이 우리 팀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못난이 팀이라서 더 놀랐다고 나는 그 팀으로는 절대 안 갈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라고 할까 솔직한 말이 그냥 지가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 A가 웃더니 팀을 이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엊그제 우리 VP 이하 팀 전체가 모인 회의에서 A의 이동이 화제가 되었을 때, A가 우리 팀이 너무 좋고 우리 제품에 대해 열정도 많지만 본인의 커리어 개발 상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어 이동을 결심했다는 PR 리뷰라도 거친듯한 전형적인 코멘트를 했기 때문에 같은 알맹이의 변주된 버전을 듣게 되려나 했는데 A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왔다. 우리 제품의 특성상 못난이 팀을 비롯 다른 제품팀과 협업이 많고 본인의 업무는 특히 부서 간의 업무 조율이라서 어느 팀에도 속한 것 같지 않은 느낌으로 지낸 지 오래였고 더 이상 그렇게 일하는 건 힘들어서 다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거다.
전혀 친하지 않은 사이에 오히려 (적어도 나는) 껄끄러운 사이에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터놓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완전히 불의타를 맞았다. 처음으로 이 사람과 사람 대 사람으로, 명상 수업에 따르면 영혼 대 영혼으로 통한 느낌이었다. 그런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마법' 같은 경험을 하고, 비즈니스로 접어들었을 때 A가 꽤 성의 있게 본인이 남긴 고춧가루 코멘트의 의미를 말로 풀어 설명해줘서 납득하고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에 대한 감도 잡았다. 회의를 마치기 전에 갑자기 샘솟은 진심으로, 팀 이동 전에 한 번 더 업무 이야기 말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동 전이든 후든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싶으면 시간을 잡으라고 본인을 활용하라고 하더라. 예전에 팀 내 여성 커뮤니티 모임에서 A가 비슷한 말을 모두에게 했을 때는 속으로 꽤 시니컬하게 반응했었는데 오늘은 액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옴 샨티.
금요일 회의를 시작할 때는 늘 "해피 프라이데이!"라는 인사로 시작한다. 그야말로 TGIF, Thank God it's Friday인 것이다. 몇 시간만 버티면 주말이 찾아온다는 기대감, 그리고 무탈하게 주말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일종의 주문. 여느 때처럼 같은 주문으로 회의를 시작했지만, 매번 이틀 전에 벌어진 기가 막힌 일 때문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리가 참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감으로 이어지는 흐름 때문에 평소보다 공기가 묵직했다. 이번 주는 점심시간마다 회사 사람이 새해맞이 기획으로 진행한 명상 강의를 들었다. 본인의 요가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한 강의인데 어제까지의 내용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지만 오늘은 'anonymous spiritual donation (익명의 영적 기부)'라는 새로운 개념을 배웠다. 문자 그대로 누군가에게 영적인 기부를 남모르게 한다는 의미인데 명상을 할 때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지금 삶에 있어 필요로 하는 영적인 무언가 (예를 들어 평화)를 내 마음으로부터 보내는 것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익숙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고 생각되는 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는 내가 그걸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할 수 있지만, '영적 기부'를 하려면 내가 그걸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해서 나도 내 마음 속에 그것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부분이다. 익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영적 기부를 한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좋은 에너지를 보내기 위해 생성하니 내게 좋고, 그 에너지가 너에게 도달해서 네게도 좋겠지. 뭐 적어도 '기부'를 할 때 얻는 좋은 일을 했다는 충족감에 다시 한번 내게 좋겠지. 집단 명상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이 아이디어가 참 따뜻하고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심호흡을 반복하며 만든 작은 마음의 평화를 기부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지난 일주일 간 AFGO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의도로 최선을 다하더라도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고 결과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 노선 변경 후 기간을 일주일 연장하여 이번 주 금요일에 일부 결과물을 내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어젯밤의 롤러코스터를 거쳐 오늘부로 결국 연내 출시를 취소하게 되었다.
요가 사상 중 개인의 몸가짐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니야마(niyama) 중 다섯번째 지침 이시와라 프라니다나 (ishvara pranidhana)에 대해 배울 때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시와라 프라니다나의 본질은 결과란 내 손을 떠나 나보다 더 큰 존재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그저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고.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한자성어 '진인사대천명'처럼!) 이는 결과에 대한 걱정 없이 행동하는 것 그 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고, 결과는 나의 가치와는 상관없다는 것과 통한다고.
최근 일련의 AFGO는 그야말로 각자 최선을 다한 결과가 우리보다 더 큰 존재에 달려있어서 우리가 원하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화되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깨달음은 요가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행동의 결과는 개인의 가치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부족해서 잘 달리던 기차가 탈선한 건 아닌지 하는 자기 의심이었다. 그리고 내 지휘봉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내 능력과 자질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 그런 자기 의심을 극복하기 위해 명상했던 것이 바로 이시와라 프라니다나다. 나는 순간순간 내 자리에서 최선의 의도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나의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 승진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 처음에는 더 뼈 아프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 자리에서 다시금 지휘봉을 흔들면서 이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노선 변경과 그 결과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거라 집단 명상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서 리드 프로덕트 매니저들에게 내가 취소를 알리는 업데이트를 보내고 나면 전체 회신하여 구성원 각자가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도록 부탁했다. 두 사람 다 흔쾌히 승낙하고 준비해준 덕에 좋은 메시지가 나갔다.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또 하늘의 손에. 각자 어떤 마음을 품었든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우리는 그 결과를 다시 하늘에 맡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