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 시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1.04.01 심경 변화
  2. 2021.03.08 꽃 도둑
  3. 2021.02.23 밤의 소리

심경 변화

내일 영주권 지문 찍으러 가는데 처음 통지를 받았을 때 기쁜 한편으로 한참 각종 범죄 뉴스에 벌벌거리고 있던 때라 다운타운에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복잡한 심경이었다. 오죽하면 코스프레용 금발 가발을 뒤집어쓰고 갈까 하고 고민했을까. 나름 꽤 진지했는데 이게 또 아시아인 대상 범죄는 피할 수 있다고 쳐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이라 여성 대상 범죄는 못 피하거든. 게다가 목적지가 이민국. 신원 조회 때문에 지문 찍으러 가는 건데 변장하고 나타나면 참으로 기특하게 여기겠다. 상담 선생님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 나라에서 더 살아보고 싶어서 영주권을 신청했던 건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다고 이건 뭐 영주권을 받는 게 맞는 건지 회의가 든다고 했더니 일 년 넘게 함께 해온 선생님이 정말이지 지금껏 본 것 중에 최고로 속상한 표정으로 나보다 더 한탄을 했었다. 어쨌든 변장 없이 평범한 나의 모습으로 페퍼 스프레이 키체인을 불끈 쥐고 리프트 타고 도어 투 도어로 다녀오는 걸로 결론을 내렸는데 며칠 사이 기분이 바뀌어서 이제는 내일 뭐 입고 나갈까 하고 눈누난나 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샌프란 사람 다 된 듯 레깅스에 파타고니아 재킷 차림으로 동네 마실 다니는 게 전부였는데 내일은 간만에 좋아하는 블레이저를 입고 다운타운에 진출할 생각을 하니 신나네. 작년에 사서 봉인 중이었던 힐도 같이 신으면 완전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하려면 역시 플랫슈즈구나 싶다. 아직 뭐 대략 그런 심경. 

 

P.S. 그러고보니 오늘은 결산하는 날이었다. 3월 한 달은 총 2,617 단어, 9,093자를 썼다. 하루 평균 131 단어, 455자. 컨셉진 프로젝트 끝나고 내 맘대로 쓰는 생활로 돌아오니 대략 다 생존신고 글이지만 글쓰기 싫은 날이 거의 없었다. 매일 글쓰기는 하루 100자 (이상) 쓰기로 4월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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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도둑

바로바로 수거하지 않으면 택배 상자 따윈 금방 도둑맞고 마는 샌프란이지만 지난 1월 프렌치 불독 강도사건의 충격은 컸고 오늘 그에 못지않은 놀라운 걸 보고 말았다.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 주민이 방범 카메라에 잡힌 도둑의 영상을 올리면서 주변에 경고를 했는데 도난당한 건 다름이 아닌 집 앞 화단에 정성 들여 심어둔 동백꽃. 흑백 화면 속에 주변을 살펴보다 훅하고 동백나무 묘목을 뿌리째 뽑아 들고 사라지는 도둑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다. 프렌치 불독은 워낙 비싼 품종이니 되팔아 돈 좀 만진다 쳐도(?)  팔뚝 사이즈의 동백 묘목은 대체... 참 살다 살다 꽃 도둑을 다 본다. 더 웃긴 건 댓글에 꽃 종류는 달라도 나도 당했다는 사람이 여럿이다. 택배 상자 도둑이며 핼러윈 장식 도둑이며 개 도둑이며 꽃 도둑이며, 너네 정말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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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

밤이 되어 어둠이 깔리면 청각이 더 예민해진다. 집안에서는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윗집에 또 손님이 온 건지 꺄르륵 대는 소리도 더 육중하게 웅웅 댄다. 창밖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거의 매일같이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집 앞 차도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오늘도 어김없다. 언덕길이라 경사진 아스팔트 위를 긁으면서 내려가는 그 소리는 차가 오가는 소리 속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고막을 때린다. 도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하면서도 뭔지 모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와일드한 상상의 즐거움이 있어 아직 탐정 모드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스케이트 보드 소리'가 들려올 때 자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잭 스켈링턴 풍의 저승사자가 영혼을 수거하느라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다. 코로나 사망자수가 50만명이 넘은 미국 사정, 최근 들어 고담 시티에 버금가는 분위기의 샌프란 사정이 무의식중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얼굴이 잭 스켈링턴이라는 데서부터 장르는 일반 호러라기보다는 코믹 다크 판타지에 가깝다고 할까. 이 상상을 더 펼쳤을 때 공포보다는 블랙 유머라도 좋으니 웃음이 더 섞여있었으면 좋겠다고 감상에 젖은 2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밤. (정신차려! 네 밤만 자면 다시 3 연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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