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에 해당되는 글 6건
- 2021.05.31 당연한 것
- 2021.03.19 자기방어 2
- 2021.03.08 꽃 도둑
- 2020.09.16 창문을 여는 사치 2
- 2020.09.14 창문을 여는 사치
- 2020.09.10 샌프란의 오렌지빛 하늘
브런치 약속에 5분 정도 늦게 되어서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먼저 도착해서 줄 서있다며 테라스에서 먹고 싶은지 식당 안에서 먹고 싶은지 물어왔다. 읭? 물어 뭐해? 당연한 거 아니야? 다인 인(dine-in) 해야지. 날씨가 끝내주게 좋든 말든 오랜 기다림 끝에 다인 인이 해금된 이상 이제 그만 됐다 싶을 때까지 계속 누려주겠어.
2년 전쯤 로앤오더 SVU를 열심히 공부하듯 (온갖 성범죄의 패턴과 위험한 놈의 행동양식에 대해 배울 수 있다-_-아는 게 힘) 보던 때 하나 장만해두는 게 좋으려나 싶어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던 페퍼 스프레이를 최근 벌어진 일련의 아시아인 대상 범죄 때문에 드디어 주문했다. 덤으로 스턴건까지. 어차피 당분간 산보도 다 반납하고 꼭 나가야 하는 게 아니면 안 나가는 완벽한 방구석 폐인 생활로 돌아갈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갈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이 좀 더 든든하겠지. 17불 남짓으로 산 약간의 마음의 평화.
어제 시내에서 길가다 갑자기 공격당한 중국계 할머니가 자신을 공격한 백인 남자를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후두려 패서 응급실 보낸 뉴스가 어찌나 통쾌하던지-_- 할머니가 맞아서 시커멓게 부은 눈으로 엉엉 울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저 놈이 날 때렸다고 저 놈 더 때려줘야 한다고 할 때 진짜 저 놈은 할머니한테 더 맞아야 하는데 싶었다. 건드리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바로바로 수거하지 않으면 택배 상자 따윈 금방 도둑맞고 마는 샌프란이지만 지난 1월 프렌치 불독 강도사건의 충격은 컸고 오늘 그에 못지않은 놀라운 걸 보고 말았다.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 주민이 방범 카메라에 잡힌 도둑의 영상을 올리면서 주변에 경고를 했는데 도난당한 건 다름이 아닌 집 앞 화단에 정성 들여 심어둔 동백꽃. 흑백 화면 속에 주변을 살펴보다 훅하고 동백나무 묘목을 뿌리째 뽑아 들고 사라지는 도둑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다. 프렌치 불독은 워낙 비싼 품종이니 되팔아 돈 좀 만진다 쳐도(?) 팔뚝 사이즈의 동백 묘목은 대체... 참 살다 살다 꽃 도둑을 다 본다. 더 웃긴 건 댓글에 꽃 종류는 달라도 나도 당했다는 사람이 여럿이다. 택배 상자 도둑이며 핼러윈 장식 도둑이며 개 도둑이며 꽃 도둑이며, 너네 정말 나빠.
창문을 여는 사치 2
창문을 여는 사치를 누리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낮에만 해도 AQI (Air Quality Index) 수치가 높은 편이라서 오늘도 창문 여는 건 포기했는데 조금 전에 친구한테 지금 AQI가 6이라며 심지어 도쿄보다 공기가 좋다고 문자가 와서 얼른 창문을 다 활짝 열었다. 이게 얼마 만에 마시는 바깥 공기인지. 며칠 전부터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려서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위험 레벨인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는데 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엊그제 보라색 (Very Unhealthy)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밖에! 강풍 덕에 연기가 좀 걷혔다고 한다. 지금 기온이 17도 정도로 꽤 쌀쌀한데 후디를 뒤집어쓰고 추위를 견디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중. 감사하고 행복하다.
최근 몇 주간 아침에 눈 뜨면 시계 보고 나서 바로 AirNow 사이트에서 공기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일상이다. 이번 주는 내내 위험 레벨로 Unhealthy와 Very Unhealthy를 오가고 있다. 이 모든 게 그동안 인간이 지구에게 몹쓸 짓 해온 것에 대해 벌 받는 느낌이다. 그래도 오렌지빛은 많이 걷혀서 어제부터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정도는 되었다. 언제쯤 다시 창문을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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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의 오렌지빛 하늘
‘Apocalypse on their mind’: Bay Area transfixed by foreboding, orange, smoke-choked skies
'Apocalypse on their mind': Bay Area transfixed by foreboding, orange, smoke-choked skies
A staggering amount of smoke billowing off fires burning since August have drifted to lower elevations, turning skies ominous tones of red, orange and gray. Hours after sunrise, it still seemed dark outside and the dim orange hue continued throughout the d
www.sfchronicle.com
맥락 없이 '오렌지빛 하늘'이라고 하면 석양에 물든 하늘처럼 낭만적인 느낌인데 오늘의 맥락에서는 공포영화다.
아침 7시 반쯤 일어났는데 평소 같으면 눈이 부실 시각인데 한밤중처럼 깜깜해서 처음에는 오늘 날씨가 많이 흐린가 했다. 너무 어두워서 거실 스탠드를 양쪽 다 켜 두고 일을 보는데 10시가 넘어도 밝아질 기색이 없어서 찾아보니 연이은 산불로 인한 스모그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바로 어제까지 밝은 하늘이었기 때문에 하룻밤 사이의 변화가 그저 놀랍다. 이런 일도 있구나.
안 그래도 시간 감각이 희미한 요즘인데 종일 우중충한 오렌지빛으로 덮인 하늘 때문에 오늘은 내내 모든 게 뒤죽박죽인 꿈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회사에서도 여기저기 큰 불 작은 불이 나서 불 끄러 다니느라 볼 일 다 보고 원래 계획했던 일은 하나도 못한 하루라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나 싶은데 어떤 의미에서는 일관성이 있네.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이 꿈에서 깰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