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 by Bird (20) 인덱스 카드

한 달 동안 매일 쓰는 독서 일기 - 스무째 날 
앤 라모트Bird by Bird (번역서: 쓰기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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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such a rare scene that you would think I would remember it forever. I used to think that if something was important enough, I'd remember it until I got home, where I could simply write it down in my notebook like some normal functioning member of society. But then I wouldn't. (...) That is one of the worst feelings I can think of, to have had a wonderful moment or insight or vision or phrase, to know you had it, and then to lose it. So now I use index cards."

 

청년성 알츠하이머가 의심되는 지경의 기억력이라 위 인용은 완전 내 이야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방지게 내가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록을 허투루 했는데 그럼 십중팔구 사요나라. 지금은 바로 적고 본다. 폰의 메모 앱에든 수첩에든. 적는 행위 그 자체가 금세 파도가 밀려와 흔적을 지우는 모래사장과 같은 내 머릿속에 조금은 깊은 자국을 남기는 듯도 싶다. 

 

90년대에 쓰여진 책이라 그런지 앤은 자신이 어떻게 인덱스 카드를 사용했는지 (집안 구석구석 둔 다든지 외출할 때도 항상 지참한다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인덱스 카드 같은 것 못 본 지 오래되어서 새삼스럽네. 글쓰기도 메모도 디지털로 하는 게 일반적이 되어서 아날로그적인 이 방법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인덱스 카드랑 인덱스 카드 홀더 (꿈을 더 키우자면 도서관의 카드 목록함!)을 주문하고픈 충동에 잠시 휩싸였으나 (뭘하든 일단 도구부터 갖추고 싶은 타입) 원래 쓰던 몰스킨 다이어리와 몇 달 전에 홈오피스 구축을 위해 산 색색깔 포스트잍으로 계속 가기로. 

 

이 장에서는 앤이 인덱스 카드에 메모해둔 내용을 1/2-1 페이지 분량의 소품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그야말로 실전 활용법을 볼 수 있었다. 

 

랜덤하지만 이 장을 읽다가 떠올린 것: 지난 주말에 홈랜드를 보다가 주인공 캐리가 국가의 사활을 가르는 중요한 녹음을 다른 스파이가 캐리에게 수면제 주사를 놓고 가로채는 바람에 몇 시간 후 깨어나서 한 번 들은 내용을 그대로 재현해서 기록하는 걸 보고 감탄하면서 (드라마지만) 스파이는 기억할 게 많아서 나는 절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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