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말하지 않은 것
2주 전쯤 1년 넘게 같이 일했던 아웃소싱 업체 직원 M이 분명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태도로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팀을 떠나서 느꼈던 섭섭함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M과 이전 팀에서부터 함께 일했던 인연으로 M과 가까운 같은 업체 직원 P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최근에 M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M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P도 M이 그렇게 인사도 없이 떠난 것에는 놀랐는데 떠난 것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고 했다. 내 귀에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실은 새로 생긴 인도 팀의 팀장과 눈에 띄게 갈등이 있었다는 거다. 인도 팀이 생겨 팀 규모가 커지면서 팀장을 새로 뽑고, 그간의 오퍼레이션을 재정비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팀장이 주도한 변화 중 하나로 정기 지식 점검 퀴즈가 있는데 P에 따르면 M은 기존 프로젝트 멤버인 본인이 새 멤버들과 함께 그 퀴즈의 대상자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퀴즈 성적이 최하위였던 것이 M의 자존심에 더 큰 상처가 된 것 같다고. 후자는 나도 짐작했던 부분 중 하나인데 전자, 그러니까 퀴즈 대상자가 된 것 자체에 불만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새 프로세스에 대한 저항은 일반적으로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 M이 새 프로세스가 불만이고 본인은 면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퀴즈에서 완벽한 성적을 내어서 팀장에게 결과로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퀴즈가 일상 업무에 대한 지식 점검이기 때문에 M이 최하위를 기록한 건 오히려 새 프로세스의 필요성, 즉 1년 넘게 일한 사람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니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 셈이다. 속상할 만도 하다. M의 심경이 괜히 새로운 걸 도입해서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게 만든 팀장에 대한 노여움이었을지, 결과로 본때를 보여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을지 아니면 이것저것 다 섞인 마음이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P를 통해 M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달 전 처음으로 ‘젊은 꼰대'라는 말을 듣고 나는 과연 젊은 꼰대가 아닌지 되돌아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직력 8년 반의 경험에 비추어 대략 3년 정도의 주기로 한 바퀴 도는 느낌이 든달까 오래 같은 팀에 있다 보면 새로 온 사람들이 내는 ‘새 아이디어'가 웬만하면 한 번쯤 들어본 것, 이미 검토해보고 그건 아니라고 결론이 난 것일 때가 많아 내심 ‘Been there, done that’하고 시큰둥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걸 있는 그대로 내뱉어서 그 ‘새 아이디어’를 저격하면 젊은 꼰대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지. 최근 경험으로 배운 것 중 하나가 상황이란 늘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닌 그 ‘새 아이디어'가 비록 예전에는 상황 상 부적격 판단을 받았을지라도 지금은 최적의 아이디어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 따라서 유연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새로 온 사람에 대한 배려로 그간의 배경 설명을 하는 것과 먼저 있던 사람의 텃세로 너만 그 생각한 거 아니라고 저격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구축, 나 자신의 평판, 그리고 당면한 문제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 있기에.
또 하나는 존중과 존경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 영어로는 둘 다 respect인데 한국어의 어감 상 내가 이해하기로는 존중은 사람으로서, 동료로서 당연히 받는 것, 존경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남보다 오래 같은 팀에서 같은 자리를 지켰다고 해서 당연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쌓아온 지식과 실적으로 존경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M의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M이 떠나기 전에 속내를 털어놓아주었다면 상황에 따라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젊은 꼰대에 대한 기사에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충고하며 가르치려는 유형’이라는 게 1위네. 나의 진실은 젊은 꼰대는 되기 싫다는 건데. 뭐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라는 뉘앙스의 차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