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반 동안 같이 일했던 아웃소싱 업체 직원 M이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우리 팀을 떠나 사내 다른 프로젝트로 옮기게 되었다. 올해 팀 오퍼레이션 상의 전략 변경으로 미국 본토에서 인원을 추가 채용하는 대신 인도에서 채용하여 기존에 태평양 시 기준 영업시간만 커버하던 것을 24시간 커버하는 태세로 바꾼 지 약 네 달만의 일이다. 사실 이 변경이 생각보다 효율적이어서 내년부터 인건비가 비싼 미국 내 인원을 감원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M의 향후 이동에 대해서 미리 업체 쪽 매니저 C에게 이야기를 해두었는데, M이 개인 진로 상의 이유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았다는 것을 C를 통해 지난주에 전해들었을 때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이별에 조금 놀랐지만 M이 무사히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는 것에 안도감이 더 컸다.
M은 장성한 아들을 둔 대만 여성으로 푸근한 엄마 미소로 그야말로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훨씬 어린 내가 업무지시를 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아시아 문화 상 나이 차이 때문에 서로 불편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M은 나를 관리자로서 존중했고, 어린 여동생을 걱정하듯 챙겨주었다. 그렇게 좋았던 관계에 변화가 생긴 건 M이 우리 팀에 와서 1년을 찍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M은 세상에 사람 좋고 열심히 하지만, 도통 실적이 늘지 않고 융통성이 부족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매뉴얼화되어있는 일 외에는 스스로 처리하지를 못했다. 그때까지는 주로 잘한 일을 칭찬하고 북돋아주는 식이었는데 도대체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해서 좀 더 직설적으로 개선점에 대해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새 팀원을 맞이할 예정이니 선배로서 새 팀원들이 적응하는 걸 도와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공공연히 더 압박을 주기도 했다.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걸 믿기 때문에 이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가 발생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화면 속 이미지로 존재하게 되었다.
지난 6월 인도팀이 생겼을 때 새 팀원들이 M의 경험과 지식에 의지하는 모습이었고 M도 그만큼 전보다 자신있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세 달이 지난 지난달부터 정기 지식 점검 퀴즈에서 M이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금방 따라 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M이 새 프로젝트로 옮겨간다고 했을 때 내 계획보다는 빠른 이동이지만 지금 옮기는 게 서로에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프로젝트는 좀 더 적성에 맞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무튼 그런저런 마음으로 그동안 고마웠다고 행운을 빈다고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이번 주의 마지막 날인 오늘 1:1 회의를 잡고, 업체 매니저 C에게도 팀 회의를 잡아달라고 해서 M을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업체 쪽 인수인계 관련 커뮤니케이션 상 문제로 마지막 날이 실은 금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이라는 걸 어제 C를 통해 전해 들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너무 초보적인 실수라 어이가 없는데 더 기가 막힌 건 M은 우리가 송별회를 금요일에 잡아둔 것을 주초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C에게 마지막 날 당일인 어제,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내일 송별회에는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해 온 거다. 내가 보냈던 1:1 회의 초대장에도 같은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왔는데 너무나 사무적인 말투로 금요일은 이미 새 팀으로 이동한 후니 회의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고, 그 경우에 본인의 메시지는 ‘그동안 정말 많이 배웠고, 좋은 경험을 했다. 모두에게 고맙다.’라고 하는 거다. 누구를 향한 메시지인거지? 나보고 팀에 대신 전달해달라는 건가? 팀 송별회와는 별개로 내가 개인적으로 초대한 건데 나에게 제3자 메시지의 형태로 인사를 전하니 메시지 자체가 뭐라고 하든 그 거리감은 너무나 분명하다. 답장을 받고 바로 금요일 1:1을 목요일로 변경하고 채팅으로 메시지도 보내서 혹시 오늘 중으로 만날 수 있는지도 물어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C에게 확인을 부탁하고 오늘을 맞이했더랬다. 그리고 오늘 C의 업데이트. M은 회의로 만나기보다는 이메일로 연락했으면 한다고, 그리고 이번 팀 이동의 배경에는 현지에 동료가 많은 팀에 소속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 그건 새로운 정보로군.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어차피 다들 집에서 일하고 언제 오피스로 돌아갈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는 좀 구차하게 들리네.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에서 이미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데. M이 말한 진로 상의 이유, 현지의 큰 팀 등등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렸고 그걸 나와 공유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서운하다. 속마음을 터놓을 만큼 나를 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지, 어쩌면 나한테 불만이 있어서 떠나는 걸 수도 있겠지. 그런 것 저런 것 다 있을 수 있지만, 기왕 구태의연한 인사말을 남기고 떠나는 거라면 잠깐 만나서 똑같은 말 하고 떠나지 왜 이렇게 뒷맛이 좋지 않게 떠나나. 행동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데. 늘 웃는 낯으로 괜찮다고 했던 말 뒤에 하지 않은 말은 무엇인가. M에 대한 좋은 기억을 다 망쳤다. 이것보다는 더 끈끈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내 사정이지만.
어쩌면 내가 액면가 이상으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M의 본심이야 나는 알 수 없고, 내가 아는 건 내가 섭섭한 것, 그리고 나는 가능하면 내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 그게 안 되면 적어도 숨길 때는 제대로 숨기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 정도다. 이렇게 주절주절 길어질 줄은 몰랐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