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매니저랑 사이가 좋은 편이기는 한데 최근 있었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발생한 일련의 문제로 지난 주말에 같이 불 끄느라 동서분주했던 이후로 더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다. 주말에 (그것도 주말의 피크인 토요일 저녁!) 매니저로부터 호출을 받는 건 당연히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과하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내가 처리한 부분에 대해서 다른 매니저들에게 확실히 어필해주었다. 우리 매니저의 그런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인정해주고 고마워하는 그런 점이 나는 참 좋고 고맙다. 이 사람 밑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고 일할 맛이 난다.
사실 처음 우리 매니저 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불안불안했었다. 당시 나는 지금의 왕보스 직속이었는데 팀이 커지면서 왕보스가 자기 밑에 우리 매니저를 고용했고 팀에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이 그 밑에 들어가게 된 거였다. 매니저 층이 하나 더 생기는 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와 매우 다른 왕보스에 대해 늘 두려움은 있었지만 존경하고 많이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아쉬움도 있었다. 게다가 다른 회사에서 전직해온 매니저라서 우리 회사에 적응하고 업무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거라는 불안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첫 원거리 매니저 (시애틀 주재)라서 과연 이 모든 불안요소 위에 이 거리감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삐딱한 시선으로 어디 두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우리 매니저는 깜짝 놀랄만한 속도로 업무 내용을 따라잡았고, 그야말로 정석으로 체계를 잡아 팀을 운영해서 트집을 잡을 부분이 없었다. 거리감에 있어서는, 경이로울 정도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솔직히 같은 오피스에 있었던 왕보스보다도 훨씬 자주 이야기했다. 그렇게 저렇게 거리가 차차 좁혀져서 지금에 이르는데... 우리 매니저는 완전히 고슴도치 엄마다. 내 부하 직원이 제일 예쁘고 제일 잘났어. 나의 좋은 점을 최대한 끌어내 주는 그런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시애틀 출장 갔던 게 작년 12월인데 언제쯤 다시 직접 만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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