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F*cking Growth Opportunity

무거운 몸을 간신히 추슬러 일어났지만 아침부터 유난히 손발이 차고 호흡이 짧았다. 안 좋은 예감. 메일함을 여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폭탄이 두 개나 떨어져 있다. 컨디션이 좋을 때라면 심호흡 한 번 하고 한 번에 하나씩 태클 해나 갈 텐데 컨디션 난조라 마음이 오락가락 둘 다 진전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방향을 잡는데만 거의 한 시간은 걸린 것 같다. 다행히 폭탄처리반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이에 하나는 남들이 해체했다. 문제는 나머지 하나. 내일 마감을 바라보고 몇 달간 달려온 프로젝트로 밥상 다 차리고 내일 떡하니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데 누가 와서 내 밥상 전체를 뒤엎으려 한다.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성이나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부외자가 와서 갹갹하니까 협력 부서 사람들이 갑자기 동요하기 시작해서 기존에 동의한 방향성에 대해 이제 와서 문제제기를 한다. 응? 응? 부외자는 부외자니까 모르고 그런다고 쳐도 너희들은 그러면 안 되잖아. 우리 부서 높으신 분들은 적어도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협력 부서와의 합동 회의에서 마지막 순간에 저쪽으로 넘어갔다. 이 무력감. 최악의 경우 책임질 각오를 하고 그대로 갈 것을 밀어붙였는데 역시 아직 내 짬빱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다. 진짜 책임지셔야 하는 분들이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미루기를 선택하셨다. 마감일을 24시간도 안 남긴 시점에서 단순히 미루는 걸 넘어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180도 선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서 칼퇴근은 반납하고 기약 없이 뒷수습에 들어갔다. 이미 오후 5시를 넘은 시점이라 뒷수습에 도움 주실 분들이 채팅으로 말을 걸어도 답이 없다. 기다리는 동안 이메일이며 문서며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새로이 떨어진 폭탄. 다 차린 밥상이 마지막에 엎어지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게 다른 프로젝트랑 꼬이는 부분이 생겼다는 거다. 이미 시작된 뒷수습을 또 뒤엎을지도 모르는 사건.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 When it rains, it pours... 다 모였구나. WTF이 절로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작년 이맘때 요가 강사 수련 중 선생님 중 한 분이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자기는 WTF 대신에 AFGO를 쓴다고. Another F*cking Growth Opportunity. 그래  AFGO 아프고. 당장 급한 거 처리하느라 하나하나 적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나중에 각 잡고 정식으로 반성문(retrospective :)을 쓰자면 오늘 '아프고!'를 외친 횟수만큼 배운 게 있는 거다. 그런 거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마지막까지 같이 수습하느라 애써준 J 말마따나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이제 진정하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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