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회사 이벤트로 다육이 화분을 만드는 강좌가 있었는데 다육이 키트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오늘 혼자 녹화 동영상을 보면서 만들었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대파 씨의 영향을 받아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한동안 쪽파를 키우다 여름이 오기 전에 그만둔 후로 집에 처음 들인 생명체. 2월에 이사한 새 집에서 올망졸망 귀여운 다육이를 키워보고 싶었는데 이사 선물로 받은 서양란과 히아신스를 석 달도 채 지나기 전에 가볍게 죽이면서 내가 식물 키우는 데는 재주가 없는 brown thumb이라는 것을 중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 받은 내 인생 첫 화분, 미니 선인장을 죽인 이후 재차 확인하는 바람에 새 화분을 들이는 것은 그만뒀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연이 닿았네.
다육이 키트에 나무 상자, 흙, 다육이, 장식용으로 자갈, 이끼, 동물 피규어가 들어있어서 만드는 과정 자체는 나무 상자에 흙을 넣고 다육이를 옮겨 심고 장식하는 걸로 간단했다. 다육이를 옮겨 심을 때 흙이 붙어있는 뿌리 부분을 부드럽게 마사지한 후, 상자 속 흙에 손가락으로 적당한 사이즈의 구멍을 내어서 심고 다육이가 흔들림 없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흙을 만져주는데 여기서 brown thumb과 green thumb이 갈리는 건가 싶다. 과연 나의 다육이들은 무사히 뿌리내릴 것인가. 강사가 다육이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으면 붙여주라고 했는데 전력에 비추어 사망확률이 높기 때문에 아직 이름을 붙여주지는 않았다.
겨울에는 하루 서너시간 정도 부드러운 아침햇살을 받게 해주는 게 좋다고 해서 아침에 남향 창문 앞 내 홈 오피스로 출근할 때마다 데리고 가서 같이 햇살을 받으면 되겠다 싶다. (*다육이의 정위치는 나의 정위치인 소파에서 잘 보이는 현관) 겨울에는 물을 한 달에 한 번만, 가을까지는 2주에 한 번 정도, 양은 다육이 하나 당 원샷(30ml) 정도로 잎에 직접 닿지 않도록 주변을 둘러서 주라고 했다. 강사가 자기는 다육이한테 샷 글라스로 물을 주는 걸 좋아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뭐 이런 거, 마음에 든다 :)
장식용으로 들어있던 이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집적대다 얘네도 바로 골로 보내게 될까봐 적당히 걸쳐두었다. 다육이도 이끼도 다음 달에 물 줄 때까지 잘 견뎌라. 살아야 해. 나는 너희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