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걱정해서 손해 봤다는 기분이었지만 약속대로 오늘 Y와 만났다. 오전 11시쯤 팬핸들에서 시작해서 골든 게이트 파크를 지나 선셋까지 넘어가서 Y가 찾은 중국식 만두집에서 만두를 테이크 아웃해서 다시 돌아가 골든 게이트 파크에서 피크닉을 하는 코스. 정작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눈 건 30분 남짓이고 둘이서 2만 보 가까이 걸으면서 그간 쌓인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에는 적어도 2주에 한 번 꼴로 같이 식사를 하거나 바에 가거나 샌프란 시내 탐험을 해왔는데 올해는 핼러윈 때 함께 승진한 걸 축하하며 초밥을 먹으러 간 것과 오늘 만난 것 이렇게 딱 두 번. 만날 때마다 찍는 셀피를 모아둔 앨범 속 몇 장 안 되는 마스크에 가려진 웃는 얼굴 사진이 거칠 것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예전 사진들과 대조되어 묘한 기분이 든다.
입사 동기 중 혼자 배속된 팀이 달라서 동기 중에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인데 Y와는 팀이 달랐지만 자리가 근처였던 것도 있고, 둘 다 먹는 걸 좋아해서 회사 선배들의 고기 모임에 같이 따라다니면서 친해졌었다. 내가 먼저 샌프란으로 옮긴 후 Y도 옮겨와서 친한 동기와 다시 함께 지낼 수 있는 게 꽤나 기뻤다. 팀은 달라도 프로그램 매니저라는 역할은 같아서 일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회사 웬수들 욕도 하고 남자 이야기로 갹갹거릴 수 있는 그런 친구. 코로나와 지금은 막을 내린 Y의 연애 때문에 서로 약간 뜸했지만 역시 직접 만나면 수다가 끊이지를 않는다. Y도 나도 웃음소리가 호탕한 편인데 일 문제도 남자 문제도 있는 그대로의 본심을 내뱉고 같이 호탕하게 하하하하하고 웃고 나면 문제는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더라도 속이 후련해진다. Y와의 걸즈 토크에는 그런 중독성이 있다.
오늘도 세 시간을 함께 걸어 다니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로 얼마나 많이 같이 웃었는지 모른다. 걱정하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