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기 팍팍해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다 받아보자라는 마음에서 지난주부터 비즈니스 코칭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 코칭 세션에서 있었던 이야기.
어제 하루 휴가 내서 3연휴를 즐기고 상쾌한 마음으로 업무에 복귀했을 터인데 제목만 보고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이메일이라고 생각해서 열었던 이메일이 바로 나를 빡치게 만든다. 나의 판단은 옳아서 그 메일 자체는 30초 내에 답변해서 보낼 수 있는 이메일이었는데, 문제는 이 질문이 지난 몇 달 동안 발신인인 타 팀 매니저와 참조에 들어가 있는 그 팀원들 (내가 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줬던 내용이라는 거다. 이미 관련된 문서도 공유해줬고, 이메일로도 두세 번 같은 질문에 답해줬고, 심지어 높으신 분과 함께 했던 1시간짜리 회의에서도 구체적으로 배경 설명을 구두로 해줬던 내용이다. 게다가 이 질문이 지금 이 시점에서 나오는 게 말이 안 되는 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근거로 해서 오퍼레이션 설계를 했고 실제로 지금 롸잇나우 그 오퍼레이션을 같이 돌리고 있는데 ‘근데 그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물어보면 어쩌라구. 늬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참조에 들어있는 파트너십 담당자가 나에게 개별적으로 네가 답할래 내가 답할까라고 물어왔길래 (이 친구도 지금껏 나와 함께 같은 대답을 반복해왔던 동지) 계약은 파트너십 쪽 영역이니 부탁한다고 하고 나는 손을 뗐다. 그러나! 이 사람들 계속 이런 식이면 내 정신건강에 나빠서 피드백을 해야겠는데 화가 치밀어서 차분하게 건설적인 피드백을 쓰는 게 쉽지 않아서 코치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코치의 첫 질문은 지금까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왔는지. 지금까지 반복된 질문을 받으면 (성질을 죽이고 :) 답변해주고 덧붙여서 이미 이 정보를 특정 문서나 이메일로 공유한 바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공손하게 불분명한 점이 있다면 추가로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마무리하는 건 내킬 때. 코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 번째 질문은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고 매번 새삼스럽게 반응하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것. 첫째, 직접 뒤져보는 것보다 나한테 묻는 게 빠르다고 생각해서 (초사이어인 버전: 게을러서!), 둘째, 이게 내 담당 영역이고 내 의무라고 생각해서 (초사이어인 버전: 내가 뭐하는 사람이고 자기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바보라서!), 여기까지 답하고 나서 말문이 막혔다. 코치가 웃으면서 자기 생각에는 한 가지 더 가능성이 있는데 그게 나를 더 열 받게 할 수도 있단다. 뭐냐고 말해달라고 했더니,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듣고 빵 터졌는데 코치 말이 맞다, 열받아ㅎㅎㅎ 상대의 동기가 무엇일지, 추측이지만 몇 가지 가능성을 나열해보니 다 마음에 안 들고 열 받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이 코치가 과연 나를 어디로 이끌려고 하는 건지 흥미가 생긴다.
다음 질문은 그래서 이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뭐냐다. 나는 지금 이 싸람들이 대체 내게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니 왜 그런지 알고 싶고, 내 시간 좀 그만 낭비하라고 나도 바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자 코치가 나에게 시뮬레이션을 해보라고 한다. 오늘의 이메일을 포함해 동일한 패턴으로 보이는 몇 가지 예시를 나열하고 내가 이미 공유한 (I already shared) 정보에 대해서는 직접 공유된 정보원을 참조하는 것이 피차 효율적이고 내가 내 다른 업무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코치가 미묘한 표정이다. 일단 사실을 있는 그대로 하나의 ‘역사'로 나열하는 것은 오케이. 그런데 ‘I already shared’가 마음에 안 든단다. 이게 너무 ‘나'를 내세운다고, available 내지는 accessible이라고 대체해서 표현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확실히 톤이 다르다. 둘 다 사실인데 ‘내가 이미 공유했잖아 너 왜 안 봐'라는 내 속마음이 ‘I’를 제거한 순간 함께 빠져서 이쪽이 훨씬 중립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코치가 비폭력 대화 (Nonviolent Conversation: NVC) 모델을 도입해온다. 관찰한 내용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 그 사실이 나에게 미치는 감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래서 내게 어떤 필요가 발생하는지 상대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를 전달한다. 코치가 상대의 의도에 대해 추측해보라고 했던 것도 상대방의 입장(필요)을 이해하고자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예전에 한 번 관련 강의를 듣기도 해서 그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닌데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아있는 동안에는 미처 생각 못 했다. 사실 이럴 때일수록 더 시도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얘네들한테 짜증을 내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얘네들이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똑바로 하는 거니까. 직간접적인 비난 없이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사실 (있었던 일도 사실, 내 느낌도 사실)만으로 정중하게 행동 변화를 요청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걸 얻을 가능성이 더 높은 길이다.
그 이후로 이게 이 팀 전체적인 패턴이라는 걸 이야기했더니 코치가 그럼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매니저가 매니저 대 매니저로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냐고 묻는다. 가능하면 매니저가 신경 쓰는 일 없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고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다 처리해서 이제 문제없다고 사후 보고하고 싶은 마음이라 약간 저항감은 있는데 팀 대 팀의 문제이니 매니저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납득이 가서 그러겠다고 하고 매니저 1:1 회의록에 추가해뒀다는 건 별론으로…
코치가 지적했던 ‘I already shared’가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하기 직전인 나의 수동적 공격성을 듣는 사람에게 꽤 명백하게 보여준다는 게 내게는 나름 오늘의 발견이었다. 그 세 단어에서 나 짜증 났다 거 그렇게 티 팍팍 났냐ㅎㅎㅎ 어쨌든 이론 상으로,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이 한 끗 차이가 결과에 있어도 차이를 만들어낼 터인데 실제 적용을 얼마나 잘 해낼지 과연 원하는 결과를 얻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