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 White Parents

4년 가까이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고, 당분간은 여기 있을 생각이라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회 문제에 대해 더 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회사에 인종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자료를 찾아보고 배우고 어떻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지 등을 토론하는 소모임이 있어서 한 달 전쯤 들어갔는데 매번 모임 때마다 회의가 겹쳐서 못 들어가다가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Nice White Parents라는 팟캐스트의 첫 에피소드에 대한 토론이었다. 점심 모임을 위해 아침 식사를 하면서 들었는데 인종 문제를 공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한 르포 형식의 팟캐스트였다. 공교육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 유색인종 학생들이 많은 학교가 왜 비교적 성적이 낮은지를 묻는데, 거기서 벗어나서 이 팟캐스트의 제목이기도 한 ‘선량한 백인 부모’가 공교육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유색인종이 재학생의 대부분이고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뉴욕시의 한 공립학교에서 시작된다. 학교 위치, 재학생 인종 구성비 등이 부모의 학교 선택에 영향을 미치면서 학교 간 인종분리가 심각화되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다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서 내 아이가 배우기를 바란 한 뜻있는 캐나다 출신 백인 부모가 이 학교에 백인 학생들을 더 모집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한 프랑스어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함께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낼 다른 백인 부모들을 모집한 것이 이 학교의 전환점이 되었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학교에서 백인 커뮤니티에서 새로 뜨는 학교가 되는데 사실 여기부터가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다. 프랑스어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부금 모집에 실제로 기부금 모집을 업으로 하는 한 백인 부모가 나서는데 기존 학부모회와 이 백인 부모를 주축으로 한 기부금 모집 그룹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사업 운영방식 등에 대해 충돌하기 시작한 거다. 히스패닉과 아랍계가 중심인 기존 학부모회 입장에서는 이 기부금 모집이 과연 모든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백인 부모가 자기 아이들만을 위해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새 그룹은 새 그룹대로 기부금 모집이 잘 되어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 학교의 위상이 올라가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입장이고, 서로 불편함을 마음속에 품은 채이다.

 

미국의 공교육이라니, 미국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교육시킬 애도 없는 나에게는 백만광년 떨어진 이야기라 에피소드 자체는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흥미롭게 듣기는 했는데 과연 토론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싶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나까지 합해 7명이 모였는데 실제로 교사 경험이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미국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대안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까지 생각보다 참가자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대안교육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 에피소드에서 왜 하필이면 백인 부모가 여기서 프랑스어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한 것인지, 근대 식민주의의 맥락으로 백인들이 또 다른 문화적 침범을 노리는 것이 아닌지라는 꽤 과격한 의문을 던졌고, 교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열악한 공립학교 사정 상, 많은 부모들이 생계 활동으로 바빠서 학교 프로그램 개선에 참여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거보다는 뭐라도 있는 게 낫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토론 중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진행자가 던진, 내가 이 학교의 학부모라면 이런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접근했을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토론이었다. 나는 일단 이 상황 속에 존재하는 양자 간의 긴장감과 불편함에 대해서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터놓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할 거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참가자들이 모든 부모가 원하는 것은 내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니 그 공통분모에서 시작해서 입장 차이를 좁혀간다거나, 서로의 의도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잘 설명한다거나 하는 의견들을 내놓았다. 내 답변을 포함해서 다 정석이다 싶다.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으니까 다들 고생하는 거겠지. 다음 회의 때문에 조금 일찍 나와야 해서 결국 오늘 토론의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직전까지 망설이다 이번 주 시이타케 별점에서 열린 마음으로 만남을 소중히 하라고 등떠밀어 준 것도 있고 해서 눈 딱 감고 들어갔던 건데 들어가길 잘했다 싶다. 잘 몰랐던 문제에 대해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 과정 자체가 긴장되기는 해도 꽤 즐거웠다.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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