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 휴가를 다녀온 매니저가 복귀 첫날 아침부터 채팅으로 나를 찾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다음 주에 있을 팀 내 여성 그룹 점심 모임의 사회자를 맡을 의향이 있냐는 거였다. 매달 한 번씩 팀 내외의 리더를 초대해서 버추얼 좌담회를 하는 기획이 있는데 이번 타자는 프로그램 매니저 그룹 디렉터(나의 왕보스)와 엔지니어링 그룹 디렉터이다. 지금껏 한 번에 한 명만 초대해왔던 게 어째 이번에는 두 사람이 번들로 따라왔다. 두 사람 다 내가 이 팀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고, 우리 매니저 생각에 둘 다 나를 예뻐라 하고 (매니저 말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도 어느 정도 예쁨을 받는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작년 말 설문조사에서 누구를 초대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두 사람의 이름을 썼던 기억이 있으니 내게 이 제안이 돌아온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결코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무대 공포증이 있는 편인데 어쨌든 내가 할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게 고마워서 겁은 나지만 덜컥하겠다고 해버렸다. 하다 보면 느니까 이건 배울 기회라고. 그러고 나서 바로 코치에게 SOS를 쳤다. 다음 주 세션에서 만나서 더 조언을 구할 예정이지만, 미리 전달받은 HBR의 How To Moderate a Panel Like a Pro와 How to Moderate a Panel Discussion 두 기사를 읽고 정리해봤다. 결국 해봐야 느는 거지만 일단 글로나마 배워서 조금은 안심이다.
- 과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다: 사전에 패널에게 미리 준비된 질문을 공유하고 그밖에 커버할 주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이메일을 하나 보내는 걸로 충분하다. 패널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이벤트 시작 전에 서로 안면을 틀 수 있도록 유도한다.
- 패널과 함께 앉는다: 별도의 단상에 서있기 보다는 쉽게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패널 옆에 함께 앉는다.
- 진행자이자 패널일 수는 없다: 진행자의 역할과 패널의 역할을 동시에 하려고 하면 토론의 균형이 무너지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고, 특정 패널이 전체 토론을 지배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 노 슬라이드: 패널이 슬라이드를 사용하게 하면 진행자의 역할은 눈에 띄게 줄게 되니 금물이다. 예외적으로 비주얼 한 주제의 경우 슬라이드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때에도 각 패널이 시각자료를 활용할 기회를 공평하게 준다.
- 목적을 처음부터 밝힌다: 장황하게 연설할 필요 없이 이 주제가 왜 중요한지,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딱 두 문장이면 충분하다.
- 패널이 직접 자기소개를 하게 하지 않는다: 패널 소개는 진행자의 몫이며 소개에 세 문장이면 충분하다.
- 첫 5분 내에 청중과 연결한다: 청중에게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음을 알리고, 패널에게도 청중의 존재를 인식시킨다. 청중 일부에게 자기소개를 하게 하면 어떤 사람들이 청중을 구성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청중에게 박수를 유도하거나 질문에 답하게 하는 것도 연결하는 좋은 방식.
- 질문만 던지기보다는 누가 대답할지 지명하라: 같은 질문을 모두에게 물을 필요는 없다. 기계적으로 돌아가면서 답하게 하기보다는 가장 관련 있는 답변을 할 패널에게 먼저 던지고, 각 패널이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관련된 질문으로 변경하거나 구체적인 예시를 묻거나 다른 질문을 하라.
- 패널이 서로에게 질문을 하도록 하는 것도 좋다: 종종 공식 진행자보다 패널 간에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으니 토론 시작 전에 미리 패널에게 권하라.
- 진행자도 대화의 참가자이다: 패널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거나 의미가 불분명한 점이 있다면 추가 질문을 통해 더 파고드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 패널의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면 잘라내는 것도 진행자의 역할이다: 진행자는 패널의 에고가 아닌 청중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패널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손짓을 하며 ‘좋은 논점이네요. 다른 패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죠.’와 같이 긍정적인 코멘트로 전환하는 것이 패널의 체면도 살리고 토론을 의미 있게 이어가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 부감하기+구체화하기+청중 참여: 토론 배분은 크게 삼등분해서 전체상을 부감하는 것, 구체적인 예시로 파고드는 것, 질의응답 혹은 청중이 직접 발표하는 기회를 주는 청중 참여로 구성하라.
- 패널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묻지 말라: 패널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물으면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으니 청중의 마지막 질문이나 그날 주제와 관련된 미래지향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낫다.
- 제시간에 마쳐라: 남은 시간을 사인으로 알려줄 사람을 섭외하거나 폰의 타이머를 진동으로 맞춰두는 등 시간관리를 철저하게 하라.
- 목표는 무대에서 다이내믹한 대화를 나누는 것: 좋은 패널 토론은 무대의 영리한 사람들과 관객석의 영리한 사람들 간에 빠른 페이스로 예상치 못한 다이내믹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