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에 해당되는 글 88건

  1. 2021.01.16 역지사지
  2. 2021.01.14 회의 매너
  3. 2021.01.11 월요일의 좋은 점
  4. 2021.01.09 해피 프라이데이
  5. 2021.01.06 복귀 첫날
  6. 2021.01.05 복귀 전야
  7. 2020.12.18 완벽주의 탈출 연습
  8. 2020.12.17 커뮤니티
  9. 2020.12.15 연봉 갱신 2
  10. 2020.12.11 연말 스크램블

역지사지

'너도 한 번 당해봐라'하고 서로 반대편에 서는 날이 오는 걸 손꼽아 기다리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한 누군가가 내 심정이 어땠을지 경험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때가 왔다. 

 

우리 매니저의 동료인 시니어 프로그램 매니저 A는 내가 우리 팀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고, 직력으로 따지면 내 2배 이상은 될 베테랑이다. 내가 좋은 첫인상을 남기는데 실패해서 그런 것인지 이 사람 스타일이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팀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약간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내 업무 처리에 대해 A가 내게 개인적으로 피드백을 주기보다는 바로 참조에 당시 내 매니저였던 왕보스를 추가해서 비난조로 따지고 든 적이 있어서 A는 성공적으로 내게 나쁜 인상을 남겼다. 그 후로 직접 같이 일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두어 번 이메일로 다시 부딪히면서 A가 남의 이메일을 제대로 읽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거나 상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거나 개인 이메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굳이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처음에는 '나'의 문제인가 했는데 이 사람이 나한테만 그러는 건 아니라는 걸 관찰하게 되어 나만 미움받는 건 아닌가 하는 불필요한 번뇌는 없어졌지만 A에 대한 껄끄러움은 여전히 남았다. 작년 12월부터 A와 업무 상 좀 더 가깝게 엮이게 되어 이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더 잦아졌는데 그새 내가 좀 크긴 컸는지 A가 이건 이래야 한다라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내 업무 분야에 대해 따지고 들거나 하면 이건 이런저런 이유로 이래야 하는 게 아니라 저래야 한다라고 받아칠 정도의 깡은 생겼다. 그러던 중 내가 진행하는 리뷰 회의의 본인 제품 관련 세션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걸 넘어서서 본인이 직접 진행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굳이 싸워서 사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원하는 대로 하라고 세션 진행 권한을 넘겼더랬다. 그래도 전체 총괄은 내가 해야 하니까 A가 본인 세션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내게 감 놔라 배놔라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허술하게 관리하는 거다. 공휴일인 다음 주 월요일 지나고 당장 화요일부터 세션이 시작되는데 목요일까지도 본인 세션 발표자들에게 일정 확인은 물론 발표가 가능한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발표자가 참석 확인을 했냐고 물어보니 그제야 연락을 했다. 그래도 시니어 프로그램 매니저 짬빱이 있어서 뒤늦은 연락이나마 전달은 제대로 했더라. 문제는 이메일을 보내만 놓고 회신이 없는데 방치 플레이. 오늘은 금요일이고 오늘이 지나면 3연휴라고! 아침에 내가 다시 물어보니 그제야 이메일 팔로우업을 시작했다. 그래도 회신이 없는 사람이 있어서 이건 따로 이야기하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고 내 업무로 돌아갔다. 5시 반쯤 이번 주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회신을 다 받았는지 확인해 봤는데 아차, 한 사람이 남았다. 심지어 A는 이미 오프라인. 결국 채팅으로 내가 최종 확인을 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겨두고, 마지막 한 사람과 따로 이야기해서 최종 확인을 받았다. 클리어했다고 메시지를 보내니 그제야 A에게서 답이 왔다. '잘 됐네'라고. 그리고 그새 새로 찾은 소소한 지적 거리를 나에게 전달한다. 이봐요, '고마워'는 어딨어? 

 

어제오늘 A에게 지적질(물론 짬밥이 다르기 때문에 공공연한 본격 지적질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이건 어떻게 되었나요? 저건 어떻게 되었나요?'하는 완곡한 지적질)을 하면서 자기는 잘못하는 거 하나도 없는 것 같은 태도로 세상에 지적질을 해온 A가 과연 내게 쪼임을 받으면서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었다. A의 답변을 받고 나니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이번 주 점심 명상 수업의 명언 '사람은 다 다를 수밖에 없어'를 명상하는 금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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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매너

우리 팀에서는 매년 한 해의 제품 로드맵을 정하고, 분기별로 보다 세분화된 로드맵을 만든다. 해당 분기에 연간 로드맵에 비추어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루어냈는지, 그에 따라 다음 분기 로드맵은 어떻게 변하는지, 예상되는 리스크는 무엇이고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분기별로 모여 각 영역별로 담당자가 발표를 하고, 높으신 분들의 승인 내지는 피드백을 받는 로드맵 리뷰 회의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게 내 업무 중 하나이다. 참석자가 우리 팀 VP 이하 높으신 분들을 포함해 40~50명은 너끈히 넘어가는 데다 실 참석자 수는 별론으로 초대장 자체가 100명 가까이에 나가는 꽤 규모가 큰 회의인 데다 기본 하루 반나절, 연일로 진행되는 회의라서 시간 분배며 일정 조정, 참석자 발표 준비 체크, 간식 등등 본 회의 진행 이외에도 소소하게 챙길 것이 많다. 4년 전 꼬꼬마로 이 팀에 들어와 처음 이 업무를 맡았을 때와 비교하면 회를 거듭하면서 상당히 여유가 생겼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 긴장되는 게 사실이다. 오늘 일사분기 로드맵 리뷰를 진행하면서 작년 3월에 처음으로 전원 화상 회의로 시작한 이후, 1년 사이클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 전원 화상 회의 모드로 들어서기 이전과 이후의 내 스트레스 지수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회의실 준비나 시애틀 출장 준비가 필요 없어져서 부담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본회의 진행 중 받는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작년 3월에 처음 전원 화상 회의 모드로 들어설 때는 대규모 회의를 과연 트러블 없이 잘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서 이것저것 더 신경을 쓰기는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회의 진행이 게임은 아니지만 일종의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 같은 기분이었달까 내가 잘해서 잘 된 것보다는 뭔가 운좋게 잘 굴러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 오늘까지 세 번을 더 거듭하다 보니 깨달은 건 확실히 내가 잘해서 잘 된 것이 있고 (겸손도 좋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참석자의 회의 매너에 생긴 변화. 예전에는 2시간에 10분 휴식할까 말까 한 페이스로 하루에만 여러 영역을 타이트하게 커버해서 발표 중 핵심적인 질의응답, 토론만으로도 빠듯했는데 다들 어찌나 궁금한 것도 많고 할 말이 많은지 교통정리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타임 체크하는 내 '말'을 안 들어서 차임벨을 도입할 정도였는데 (그리고 웃는 얼굴이 그려진 노란 차임벨은 이 회의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 그걸로도 부족해서 제시간에 회의를 끝내도록 관리하는 것은 꽤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전원 화상 회의가 되면서 다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 있어서인지 남들과 말하는 타이밍이 겹치지 않게 '손들기' 기능을 이용해서 발언권을 얻기까지 기다리고, 발언 내용 자체에도 보다 신중을 기하고, 시간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한 방에 몇십명씩 모여서 회의를 하던 시절, 남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끼어들어서 자기 할 말을 하거나 남이 이미 했던 이야기를 자기 표현으로 다시 반복하거나 제한 시간이 종료되었다고 알려도 무시하고 자기 할말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쟁점을 던지는 모습 등등이 흔하게 있었던 걸 돌이켜보면 구성원 자체는 똑같은 사람들인데 싶어 감개무량하다. 회의 매너, 우리도 하면 되네!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되찾은 (혹은 새로 장착한) 회의 매너 덕에 오늘 회의는 진행자로서 존중받으면서 스트레스가 거의 없이 내 역할을 즐기며 진행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 리모트 워크의 실버라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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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좋은 점

자고 일어나면 월요일이지만 버티면 아직 일요일이라는 일상적인 현실도피 중. 자고 일어나면 좋은 점을 생각해보자. 

 

1. 지난 주에 못다 한 일을 끝낼 수 있다. 

2. 새 마늘볶음밥 레시피를 시도할 수 있다. 

3. 주말을 향한 카운트 다운이 다시 시작된다. 

 

나쁘지 않다. 이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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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프라이데이

금요일 회의를 시작할 때는 늘 "해피 프라이데이!"라는 인사로 시작한다. 그야말로 TGIF, Thank God it's Friday인 것이다. 몇 시간만 버티면 주말이 찾아온다는 기대감, 그리고 무탈하게 주말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일종의 주문. 여느 때처럼 같은 주문으로 회의를 시작했지만, 매번 이틀 전에 벌어진 기가 막힌 일 때문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리가 참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감으로 이어지는 흐름 때문에 평소보다 공기가 묵직했다. 이번 주는 점심시간마다 회사 사람이 새해맞이 기획으로 진행한 명상 강의를 들었다. 본인의 요가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한 강의인데 어제까지의 내용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지만 오늘은 'anonymous spiritual donation (익명의 영적 기부)'라는 새로운 개념을 배웠다. 문자 그대로 누군가에게 영적인 기부를 남모르게 한다는 의미인데 명상을 할 때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지금 삶에 있어 필요로 하는 영적인 무언가 (예를 들어 평화)를 내 마음으로부터 보내는 것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익숙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고 생각되는 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는 내가 그걸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할 수 있지만, '영적 기부'를 하려면 내가 그걸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해서 나도 내 마음 속에 그것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부분이다. 익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영적 기부를 한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좋은 에너지를 보내기 위해 생성하니 내게 좋고, 그 에너지가 너에게 도달해서 네게도 좋겠지. 뭐 적어도 '기부'를 할 때 얻는 좋은 일을 했다는 충족감에 다시 한번 내게 좋겠지. 집단 명상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이 아이디어가 참 따뜻하고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심호흡을 반복하며 만든 작은 마음의 평화를 기부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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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첫날

막상 일하기 시작하니 재밌다. 일 안 하고 더 놀면 더 노는 대로 좋았겠지만 일 하는 건 일 하는 거 대로 괜찮네. 동시에 주말을 향한 카운트다운은 시작했다. 그리고 월요병 대책으로 마련한 그것은 증상과 상관없이 꿀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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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전야

12 연휴를 마치고 내일부터 다시 일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울해지는 거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직장 생활 시작한 이후 역대 최장 연휴인데 이것도 부족하다는 일종의 벤치마크가 생긴 셈인가. 퇴근토끼 한정으로 월요병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그것은 이미 구비해두었으니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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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 탈출 연습

나는 크리스마스이브 이브까지 일할 예정이라 아직이지만 회사 전체적으로 대략 오늘을 마지막으로 대략 파장하는 분위기라서 다들 오프라인이 되기 전에 보내야 할 업데이트만 해도 다섯 개는 되어서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은 어제까지 마쳐서 보내고 싶었던 것이 두 개인데 하나는 지쳐서 더 못했고 하나는 원래 월요일까지 자기 분량을 마무리해서 바통 터치해주겠다고 했던 사람이 매일 확인을 해도 계속 '오늘 중으로'라고 하면서 안 보내줘서 결국 오늘 할당량이 늘었다. 최대한 회의를 줄이고 겨우 확보한 순수 작업 시간이 1시간 남짓.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까 더 철저하게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오늘까지 꼭 해야 하는 것, 오늘까지 하면 좋은 것을 분명히 해서 다섯 개를 세 개로 줄였다. 그리고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 다른 사람의 리뷰가 필요한 것, 다른 사람의 작업 분량을 기다리는 것을 나눠 그에 따라 작업 순서를 정한다. 그리고 어제 점심 모임에서 워크 라이프 밸런스에 대해 토론하면서 나왔던 Good enough is better than perfect라는 조언에 비추어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가 늦어지거나 아예 못 하는 것보다는 어쨌든 결과물을 내는 게 낫다는 걸 되뇌며 작업을 했다. 다른 사람 작업 분량을 기다리는 것도 결국 기약이 없어서 내 분량만 보내면서 추가 업데이트를 예고하는 걸로 하고 결국 3/3. 꽤 상쾌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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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오늘은 팀 내 여성 커뮤니티의 점심 모임 2020년 마지막 날이었다. 9개월 전 재택근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때 시작되어 격주로 만나서 스탠퍼드 여성 리더십 커리큘럼에 따라 강연 비디오를 함께 보고 토론하거나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팀 내외의 리더를 초청해서 좌담회를 갖거나 했다. 팀 내 남초 현상이 심해서 (보다 근본적으로 업계, 회사 자체가 남초) 얼마 안 되는 여자들끼리 뭉치기 쉬울 것도 같은데 막상 계기가 없으면 꼭 그렇지도 않아서 이번에 총대를 메고 기획을 해준 4명의 발기인들이 고맙기가 그지없다. 덕분에 드디어 '커뮤니티'가 생겼어. 처음에는 직접 같이 일하지 않아 이름이랑 얼굴 정도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온라인으로 서로 알아간다는 것에 불안감도 있었는데 남초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만의 동병상련이랄까 여자들끼리만 통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매번 만날 때마다 뭔가 새로 배우는 것이 있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서 올해를 통틀어서 아니 내 회사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정기 회의가 되었다. 오죽하면 쉬려고 휴가 냈을 때도 이 점심 모임에는 들어갔을 정도다. 이 커뮤니티가 생기기 전에는 이런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렵게 보였는데 첫 단추만 끼우면 구성원들이 다 알아서 굴리게 되어있다. 다들 이런 걸 원하고 있었거든. 우리 커뮤니티의 1) 발기인들이 정기 일정과 각 모임의 주제를 정하고, 3) 각 모임의 리드는 커뮤니티 멤버가 자원하도록 해서 특정인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방식이 굉장히 유효했다고 본다. 남초 조직에서 고독한 여성 동지들에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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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갱신

연차가 쌓여도 여전히 들어가서 뭔 소리를 해야 하는 건지 애매한 게 매니저와 인사고과, 연봉 갱신을 이야기하는 회의인데 오늘 후자가 있었다. 숫자에, 특히 돈에 약한 편이라 매번 내년 연봉이 올해에 비해 얼마 올랐다고 해도 이게 내가 좋은 대우를 받은 건지 아닌지 감이 잘 안 오고 의기양양하게 이만큼 올려줬다고 말하는 매니저들에게 땡큐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미리 인사부의 연봉 갱신 관련 정보 세션도 듣고, 내 직급 평균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시장 조사도 좀 하고, 예년의 연봉 상승률도 복습하고, 나름 준비한다고는 했는데 이런다고 과연 뭐가 달라질까 싶어 예전과 다름없는 긴장감으로 회의에 임했다. 숫자를 공개하기 전에 우리 매니저❥가 고슴도치 엄마 화해서 새삼 물고 빨고 하는데 코로나 영향으로 올해 연봉 상승률이 전보다 못하다는 소문을 들었던터라 매니저가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건가 싶은 거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조금 준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새 내 숫자감각이 일취월장했을 리는 없고 이건 내 둔한 감각으로도 알겠는 거다. 회사에 단물 쪽쪽 빨려서 고갈되어가는 느낌이 절정에 달한 12월이었는데 드디어 꿀 떨어졌다! 알아줘서 두둑이 챙겨줘서 고맙고 이걸로 빚 갚을 생각 하니까 신난다ㅠㅠ고 무필터로 이야기했더니 매니저가 자기도 왕보스한테서 연봉 갱신 결과받았을 때 똑같은 생각이 들었대서 어째 둘이서 한참 모기지 리파이낸싱 이야기로 불타올랐다. 결국 예년과 마찬가지로 '땡큐'말고는 연봉 갱신 자체에 대해 의미 있는 대화를 한 건 없는데 그래서 더 좋은 회의였다 싶다. 이번에는 제대로 감 잡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땡큐'가 올라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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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스크램블

미국 회사는 12월 중순부터 휴가 모드라 빠르게는 다음 주부터, 대부분은 크리스마스가 낀 그 다음 주부터 사람들이 사라질 예정이다. 12월은 결국 31일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정상 업무가 돌아가는 건 월초 10일 남짓. 11월 말 추수감사절 주간부터 이미 한 해가 끝난 것 같은 분위기가 시작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바쁘다.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붙잡고 이것저것 끝내야 하니까. 

 

12월에 들어서면 악착같이 연내에 끝낼 것과 포기하고 얌전히 내년으로 넘길 것을 선택하고 행동에 옮기는 게 필요한데 어째 돌아가는 게 취사선택이라는 게 없는 분위기다. 코로나 때문에 예년보다는 널럴하게 연말을 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했던 안일한 기대는 처절하게 배신당했다. 회의 시작 전 'How are you?'라는 인사에 통상 'Good. How are you?'하고 인사 아닌 인사를 하고 넘어가는데 요즘에는 솔직하게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말하고 넌 어떠냐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도 그렇다고 이번 연말에 이렇게까지 바쁠 줄은 몰랐다고 그런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이번 주에 분기당 한 번 열리는 팀 전체 회의에서 올 한 해 우리팀이 성취한 것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90분 회의 중에 거의 1/3 가량을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 와중에 많이도 성취했다는 게 자랑스러운 한편으로 이렇게 뭘 많이 하려고 했으니 다들 번아웃으로 고생했지 싶은 거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전사적인 메시지가 이 상황이 마라톤이라는 걸 잊지 말고 각자 자기 자신을 잘 챙기면서 우선순위에 신경 쓰자는 거였고, 우리 팀 리더십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평소보다 우선순위를 더 열심히 세우기는 세웠는데 위에 꺼 마치면 끝없는 목록을 계속 헤쳐내려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심지어 코로나와 재택 상황 때문에 새로 생긴 일도 있었다. 어쩌라고. 

 

리서치팀 매니저 G와 회의 시작 전 인사를 나누다 연말에 끝내야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느끼는 압박에 대해 같이 한탄하는데 G가 바로 전 회의에서 만난 프로덕트팀 디렉터 M 역시 그런 압박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 했다. 디렉터급이 그렇게 느끼는 건 그 압박은 그 위에서부터 온다는 거고, 디렉터급이 그렇게 느끼면 그 압박은 당연히 그 밑에 사람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거니 G나 내가 이렇게 빨대 제대로 꽂혀서 쪽쪽 단물 빨리는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거지. 

 

이번 주에 있었던 사내 강연에서 한 높으신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어디엔가 선을 긋고 그 아래쪽은 잘라버려야 한다고. 옳으신 말씀. 다만 올해는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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