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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함께 일해온 로컬리제이션 담당자가 팀을 이동하게 되어 후임자를 뽑을 때까지 임시로 우리 팀을 지원해줄 예정인 A와 서로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A의 싹싹한 태도와 조리 있는 말솜씨에 꽤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일은 딱 부러지게 하지만 무뚝뚝하고 약간 엉뚱한 면이 있었던 전임자와 다른 스타일로 이쪽이 개인적으로 더 잘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거기서 끝났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겠지. 물론 약간의 반전이 있었다.
서로 소개를 마치고 내가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배경을 설명하고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할지를 이야기하면서 예시로 제품팀과 로컬리제이션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핑퐁 중인 기술적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이처럼 기술적 문제가 있을 때 사내에서 사용하는 티켓 시스템을 통해 티켓을 보내 컨설팅을 요청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A가 전임자와 달리 본인은 기술적인 배경이 없어서 티켓이 배정되면 확인이 늦을지도 모르니 티켓을 보낼 때 이메일로 따로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응? 기술적인 배경이 없어서 직접 조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라면 알겠는데 기술적인 배경이 없는 거랑 티켓 확인이 늦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전사적으로 사용하는 티켓 시스템이고 직관적인 디자인이라 사용하는데 대단한 기술적인 배경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몇 주 쓰다 보면 익숙해질 만한 시스템이다. 나도 티켓 시스템보다는 메일로 받을 때 회신이 빠른 편이라 아마 A가 말하고자 한 건 본인에게 어떤 채널로 연락할 때 더 효과적인지일 거라고 이해는 했는데 앞뒤가 안 맞아서 의도가 뭔지 잠깐 생각해야 했다.
회의에 함께 참석한 팀 동료가 전임자와 논의해왔던 프로세스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느 정도 실마리는 잡았지만 실제 대책까지는 연결되지 않은 상태라서 앞으로도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A가 그렇게 안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기가 사실은 내성적이라며 로컬리제이션 측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응? 굳이 그렇게 말 안 해도 필요한 게 있으면 당연히 협조 요청할 건데 내성적인 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지? 내성적이든 외향적이든 상관 없는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프로세싱을 거친 후 아마 A가 말하고자 한 요지는 임시 담당자로서 적극적으로 개선 제안을 해나가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으니 제품팀 쪽에서 적극적으로 제안해오면 지원하겠다는 것일 거라고 이해했다.
앞으로 함께 일할 사이에 서로의 일하는 방식과 제약 사항을 이해하고 서로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거나 불필요하게 부딪힐 일이 없도록 사전에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A가 먼저 자신의 방식에 대해 소개하고 기대치를 조정하려고 한 건 좋았다. 다만 전제랑 결론의 관계가 미묘해서 표면적으로만 보면 기술적 배경이 없고 내성적이라 일을 못 하겠다는 것 내지는 본인 몫을 남에게 넘기는 것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 마찬가지로 기술적 배경이 없고 내성적인 사람으로서 이런 설명 방식에는 저항감이 든다. 기술적 배경이 없어도 얼마든지 사내 티켓 시스템 정도는 쓸 수 있고, 내성적이어도 얼마든지 발의해서 논의를 주도할 수 있다. 일이니까. 그래서 월급 받는 거잖아.
A의 첫인상은 결국 살짝 미묘한 것이 되어버렸다. 앞뒤가 맞게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긍정적인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일이 즐겁다고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점과 점을 연결해서 선이 되었을 때다.
- 여기저기 산재된 정보의 퍼즐 조각을 모아 큰 그림을 완성시켰을 때
- 다른 분야에서 배운 것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할 때
- 진전이 없던 것을 다음 단계로 이동시켰을 때
-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을 때
오늘 유난히 일하기 싫고 의욕이 없어서 생각해본 일의 즐거움. 돌이켜보면 오늘 전부 다 했구나. 결과적으로 괜찮은 하루인 걸로!
지난 한 주 사이에 굿바이 이메일을 연속으로 두 통이나 받았다. 인사고과 후가 이동이 가장 많은 시기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 했고, 4년 넘게 같은 팀에 있으면서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지만, 역시 굿바이 이메일을 받을 때 드는 아쉬움에는 변함이 없다. 굿바이 이메일에 답장을 쓸 때는 항상 십 분 정도는 확보한 후, 심호흡 한 번 하고 자판을 쳐 내려간다. 구태의연한 그동안 고마웠다 앞으로 건승을 빈다라는 말 외에 떠나는 이와의 개인적인 기억에 대해 짧게나마 덧붙이려고 한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감상은 제쳐두고, 굿바이 이메일은 내게 흥미로운 대상이다. 어떤 제목과 내용으로 안녕을 고하는지, 그리고 수신인이 누구이며 수신 설정이 직접 수신인지 참조인지 숨은 참조인지 등등에서 발신인의 일면을 엿보는 느낌이다.
기억에 남는 굿바이 이메일 제목 중 하나는 ‘So long farewell auf wiedersehen goodbye’다. 내가 사운드 오브 뮤직 팬이라서 '너도 팬이었니?!'하는 반가운 마음, 그리고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되는 폰 트랩가 아이들의 합창이 이별의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지금 팀은 자동차 관련 제품 담당이라 굿바이 이메일 제목도 ‘Changing lanes’, ‘Taking the next exit’, ‘Thanks for the ride’처럼 운전과 관련한 테마가 많다. 이 팀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제목의 이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는 신선했는데 얼마지 않아 돌려쓰는 제목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누군가 참신한 제목으로 굿바이 이메일을 보내온다면 그 사람을 다시 볼 것 같다. 나는 지난 8년간 포지션 이동은 여러 번 있었지만 팀 이동은 4년 전 미국으로 건너올 때 한 번 뿐이라서 굿바이 이메일을 보낸 경험도 역시 한 번뿐인데 그때 나는 '돌고 돌아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잠시만 안녕'의 느낌으로 ‘Thank you & see you again’이라는 꽤 직설적인 제목을 선택했다. 지금 팀을 떠날 예정은 아직 없지만 굿바이 이메일을 쓰는 그날이 온다면 운전 관련 테마로 센스있는 제목을 선택하겠다는 쓸데없는 야심이 있다. 장롱면허 주제에.
본문은 그동안 즐거웠다, 많이 배웠다, 모두 고맙다라는 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떠나는 이와 팀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들 (제품 출시, 대외 이벤트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경우를 좋아한다. 내가 그때 함께 했든 아니든 그 에피소드는 떠나는 이의 기록을 통해 역사로 남는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적어도 내 기억에는 남는다. 그 사람의 이미지와 함께. 사라질 때까지.
수신인과 수신 설정도 흥미로운 게 전체 팀과 관련 부서 사람들을 다 수신인에 넣어 이별을 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접 속해있는 작은 그룹에만 고하는 사람, 전원 숨은 참조로 고하는 사람 등등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아예 소리 소문 없이 떠나는 사람은 별론으로. 나는 전원 숨은 참조로 이별을 고하는 타입(?)이다. 모두 수신인에 넣어 보낼 경우에 전원 회신으로 답장을 받는 게 쑥스럽다. 그리고 살짝 나만 볼 거니까 답장하는 사람들이 내 귀에 소곤대듯 소소하게나마 진심을 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전원 회신의 경우가 주목도가 더 높고 전원 숨은 참조의 경우 이메일의 홍수 속에 묻혀 읽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보내는 이메일에 평소 주목해온 사람들에게는 닿겠지, 아님 말고 하는 안일한 마음.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는 괜히 동질감을 느낀다.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굿바이 이메일이 주는 아쉬움에 뭐라도 좋은 걸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걸지도.
오늘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 약간 다른 방식과 뉘앙스로 해야 했던 잔소리. 기다리지 마.
분담해서 진행하는 업무를 특정 기일까지 완수해야 하는데 내 몫을 하기 위해 누군가가 먼저 자기 몫을 하기를 기다리는 중인데 공이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다고?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지 말고, 그 사람한테 언제 넘겨줄 거냐고 물어봐. 알고 보니 실은 공이 손안에 있었다고? 뭘 기다리고 있어. 네 할 일 해.
가끔은 사람들이 무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앞으로 공을 굴립시다.
타고난 몸치지만 발레의 우아함을 동경해서 2년 넘게 취미로 발레 수업을 듣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스튜디오는 닫은 지 오래고 대신 줌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키친 카운터를 발레 바 삼아 작은 화면 속 선생님을 보며 나 홀로 따라 하는 건 역시 전면 거울 스튜디오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춤추는 것과 큰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줌을 통해 흘러나오는 라이브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춤추는 이 시간은 자택 대기 생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계속 한 선생님 수업만 듣다가 지난주부터 다른 선생님 수업도 함께 듣기 시작했는데 새 선생님은 한 콤비네이션이 끝날 때마다 “Lovely dancers. Wonderful work.”라고 한다. 줌 화면 속에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코딱지만 한 네모 속에서 카메라 각도도 제대로 안 맞은 상태로 춤을 추는데 그리고 나처럼 카메라를 끄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과연 제대로 보기나 하고 하는 말일까. 원래 듣던 선생님은 담백한 사람이라 (오히려 채찍질하시는 타입) 새 선생님의 밑도 끝도 없는 칭찬이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다. 오늘은 그나마 두 번째 수업이라서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첫 수업 때만큼 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중에 꽤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마쳤을 때 선생님이 같은 말을 하자 왠지 뿌듯하고 기뻤다. 그냥 입버릇처럼 하는 말일뿐일 건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sh*t sandwich를 먹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최근에 먹은 것 중에 쓸데없이 기분 나빴던 게 같이 일 한지 얼마 안 되어서 서로 알아가는 사이인 S가 내가 회의를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 피드백을 할 때 “Thank you for 어쩌구, but 저쩌구.”하면서 그냥 하는 말로 Thank you를 붙였을 때다. 국어책 읽는 듯이 고맙다고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오히려 싫은 소리 하기 전에 쓸데없이 사탕발림하는 건 어린애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 피드백을 하려거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게 낫다. 네드 스타크가 말했듯이 "Everything before the word 'but' is horse sh*t."이다.
발레 선생님의 “Lovely dancers. Wonderful work.”는 그냥 하는 말이든 뭐든 but이 없어서 좋다. 처음엔 어색했어도 이와중에 집에서라도 계속 춤추려는 학생들을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인가 보다 하고 이제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물론 국어책 읽기가 아니라 나긋나긋한 고운 목소리로 리드미컬하게 살짝 감정이 실린 “Lovely dancers. Wonderful work.”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평소 왕복 3시간 걸리는 통근을 하다가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키친 카운터에서 식사를 마치고 창가 식탁에 꾸며둔 오피스 공간으로 열 발짝 걸으면 출근 완료인 생활로의 전환은 내게 꽤 극적인 변화였다. 기나긴 통근에서 해방되어 ‘9시 출근, 6시 퇴근’을 기본으로 매일 칼퇴근을 목표로 하지만 까딱하면 뒤로 늘어지기 십상이다.
업무 공간과 개인 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시간의 연속성만 남으면서 공사전환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서 회사에서 파일럿으로 ‘버추얼 통근’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우리 팀도 오늘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오후 5시 반부터 15분간 업무를 마무리하고 사생활로 돌아가는 의식을 습관화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오늘 첫 세션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의 3단계.
1. 완벽주의를 내려놓기
양 손을 깍지끼고 손목과 팔을 움직여 웨이브를 만들면서 몸을 풀어준다. 웨이브가 뻣뻣하게 느껴져도 모양이 이상해도 ‘이걸로 충분해'라고 되뇐다. 이어 팔다리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면서 업무 중 쌓인 심신의 긴장을 풀어준다. 몸을 움직이면서 일중독 상태인 뇌에 이제 그만해도 좋다고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흥미롭다.
2. 책상 정리
오늘 사용한 머그잔이나 노트, 포스트잇 등을 치우면서 마음도 함께 정리한다.
3. 좋아하는 음악을 ‘엔딩 테마곡’으로 깔기
내가 정한 퇴근송은 바로 이 노래, Postmodern Jukebox 버전 Halo. 어깨춤이 절로 나는 흥겨운 노래라 열 발짝 퇴근길을 춤추면서 갈 수 있다.
15분의 의식을 따라가면서 마음이 꽤 차분해져서 세션을 마치자마자 바로 컴퓨터 끄고 파장할 생각이었지만 아쉽게 꼬리를 잡히는 바람에 결국 콜 하나, 메일 몇 통 더 하고 1시간 넘게 더 일하고 말았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끝나자마자 바로 부엌으로 달려가느라 아쉽게도 오늘 배운 걸 실제 퇴근길에 적용하지는 못했다. 내일 세션에서 재도전!
(속) 말하지 않은 것
2주 전쯤 1년 넘게 같이 일했던 아웃소싱 업체 직원 M이 분명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태도로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팀을 떠나서 느꼈던 섭섭함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M과 이전 팀에서부터 함께 일했던 인연으로 M과 가까운 같은 업체 직원 P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최근에 M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M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P도 M이 그렇게 인사도 없이 떠난 것에는 놀랐는데 떠난 것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고 했다. 내 귀에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실은 새로 생긴 인도 팀의 팀장과 눈에 띄게 갈등이 있었다는 거다. 인도 팀이 생겨 팀 규모가 커지면서 팀장을 새로 뽑고, 그간의 오퍼레이션을 재정비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팀장이 주도한 변화 중 하나로 정기 지식 점검 퀴즈가 있는데 P에 따르면 M은 기존 프로젝트 멤버인 본인이 새 멤버들과 함께 그 퀴즈의 대상자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퀴즈 성적이 최하위였던 것이 M의 자존심에 더 큰 상처가 된 것 같다고. 후자는 나도 짐작했던 부분 중 하나인데 전자, 그러니까 퀴즈 대상자가 된 것 자체에 불만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새 프로세스에 대한 저항은 일반적으로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 M이 새 프로세스가 불만이고 본인은 면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퀴즈에서 완벽한 성적을 내어서 팀장에게 결과로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퀴즈가 일상 업무에 대한 지식 점검이기 때문에 M이 최하위를 기록한 건 오히려 새 프로세스의 필요성, 즉 1년 넘게 일한 사람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니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 셈이다. 속상할 만도 하다. M의 심경이 괜히 새로운 걸 도입해서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게 만든 팀장에 대한 노여움이었을지, 결과로 본때를 보여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을지 아니면 이것저것 다 섞인 마음이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P를 통해 M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달 전 처음으로 ‘젊은 꼰대'라는 말을 듣고 나는 과연 젊은 꼰대가 아닌지 되돌아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직력 8년 반의 경험에 비추어 대략 3년 정도의 주기로 한 바퀴 도는 느낌이 든달까 오래 같은 팀에 있다 보면 새로 온 사람들이 내는 ‘새 아이디어'가 웬만하면 한 번쯤 들어본 것, 이미 검토해보고 그건 아니라고 결론이 난 것일 때가 많아 내심 ‘Been there, done that’하고 시큰둥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걸 있는 그대로 내뱉어서 그 ‘새 아이디어’를 저격하면 젊은 꼰대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지. 최근 경험으로 배운 것 중 하나가 상황이란 늘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닌 그 ‘새 아이디어'가 비록 예전에는 상황 상 부적격 판단을 받았을지라도 지금은 최적의 아이디어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 따라서 유연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새로 온 사람에 대한 배려로 그간의 배경 설명을 하는 것과 먼저 있던 사람의 텃세로 너만 그 생각한 거 아니라고 저격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구축, 나 자신의 평판, 그리고 당면한 문제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 있기에.
또 하나는 존중과 존경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 영어로는 둘 다 respect인데 한국어의 어감 상 내가 이해하기로는 존중은 사람으로서, 동료로서 당연히 받는 것, 존경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남보다 오래 같은 팀에서 같은 자리를 지켰다고 해서 당연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쌓아온 지식과 실적으로 존경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M의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M이 떠나기 전에 속내를 털어놓아주었다면 상황에 따라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젊은 꼰대에 대한 기사에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충고하며 가르치려는 유형’이라는 게 1위네. 나의 진실은 젊은 꼰대는 되기 싫다는 건데. 뭐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라는 뉘앙스의 차이로 :)
일본에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팀 내에서 내성적인 내 성격에 대한 일종의 농담이 생겼다. 나는 같은 테이블에 4명 이상 있으면 입을 닫는다는. 꽤 정확한 관찰에 근거한 이야기로 본인이 인정한 농담이다. 좋게 해석하면 나는 잘 듣는 사람이라는 건데 그건 절반의 진실이고, 그룹이 커지면 커질수록 가늠하기 어려운 말하는 타이밍,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 등등 때문에 머릿수가 어느 정도 되어 내가 굳이 열심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면 방관자적 위치를 지킨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내게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이라도 할라치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대본을 미리 준비해 거의 외우다시피 준비해야 했고, 본방 때는 이미 혼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대본대로 제대로 말했는지 뭔지도 기억 못 하고 그저 끝나면 안도의 한숨을 쉴 뿐이었다. 첫 매니저가 선배 팀원들을 동원해 나를 위한 ‘hot seat’ 세션을 마련해 그야말로 전원이 나를 까다로운 질문으로 들들 볶는 식으로 코칭을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당일 갑자기 발표 주제를 정해 예정에 없던 발표를 하기도 하고, 외부 손님을 모신 자리에서 사회를 맡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걸 즐기기도 한다. 모두 오늘 있었던 일인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감개무량하다.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자세히 쓸 기회가 있겠지만, 하다 보면 는다. 확실히.
오늘은 즉흥극(improv)의 형식을 빌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을 연습하는 워크숍 6주 코스의 마지막 날이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5시부터 7시. 만성 월요병 환자로서 월요일 저녁의 피로도는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지난 6주간 이 시간은 무거운 눈꺼풀을 부릅뜨고 기다리는 퇴근 후의 즐거움이었다. 지난 5주간 12명의 다른 참가자와 함께 강사가 제시하는 서로 다른 비즈니스 상황에 대해 두세 명이 짝을 이뤄 역할극을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할 말을 하는' 연습을 해왔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일단 ‘할 말을 하는' 연습이 필요한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들로 일단 말을 하기 시작하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외교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더 강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은 뜻밖에도 지금까지와 달리 모든 필터를 제거하고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던지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과연 마지막 수업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을 맞이할 것인가?
강사가 제시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업무 성과 미달로 감독이 필요한 직원이 감독을 거부할 때, 채용과 관련하여 두 후보자에 대해 상사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 품질 관리를 위해 테스트를 추가하면 제품 출시일이 늦춰지는 상황에서 다른 부서의 담당자와 의견 차이가 있을 때. 다 쉽지 않은 상황들이다. 내 즉흥극은 첫 번째 상황으로 내가 감독자 역할이었다. 첫 수업 때도 첫 타자였는데 마지막 수업에서도 강사 지명으로 첫 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내 첫 번째 시도는 한 마디로 실패였다. 필터를 모두 제거하라는 지령이 있었음에도 HEPA 필터 못지않게 겹겹이 촘촘한 나의 공손한 사람 필터를 한번에 들어내기란 쉽지가 않아서 상대역의 저항 (나는 잘하고 있으니까 감독 따윈 필요 없어)에 부딪혀 ‘한 번 생각해봐.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로 후퇴해야 했다. 강사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그대로 표현했냐고 물어왔을 때 내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차 시도. 1차 시도에서는 개선점이 보인다 정도로 표현했던 것을 직접적으로 업무 성과 미달이라고 언급하고, 이러한 평가는 내 개인 의견이 아닌 매니저급의 공통 의견임을 알리고 개선점을 제시하면서 감독자로서 매주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성장을 돕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처음 오늘의 지령을 받았을 때 한순간 F워드가 연발되는 상황극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매우 뜨뜻미지근한 스타트를 끊었다. 1차 시도에 비해 2차 시도가 훨씬 더 직접적으로 할 말을 했고 내 표현 어디에도 부적절한 부분이 없었다는 총평이었는데 나중에 파악한 강사의 원래 의도가 1차 시도에서 있는 그대로 쏟아부어 부적절한 상황을 경험하고, 2차 시도에서 적절하게 수정해나가는 것이었다는 데 비추어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한 공간에서 속에 있는 독기를 다 뿜어냈을 때의 데미지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시험해볼 기회였는데. 다른 참가자들의 상황극도 크게 험악해지는 경우 없이 온건한 밀당을 반복하다 더 끈기 있게 버틴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상황으로 대략 마무리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한 참가자가 상대역과 의견에 대립되는 상황에서 딱 잘라서 ‘No’라고 말했을 때다. 나는 관찰자일뿐인데도 그 한 마디에 해방감을 느꼈다. 평소 단순한 그 한 마디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던가. 한 마디로 끝날 일을 ‘외교적으로' 주절주절 길게 늘어놓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강사가 마무리 코멘트로 이번 연습을 통해 어려운 대화를 할 때 문제의 본질에 대해 직접 논의하지 않고 ‘dancing around’하는 것이 외교적이고 아니고를 떠나 비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으면 했다고 이야기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 마음속에 있는 말 (예: 너는 현재 업무 성과 미달이니 감독이 필요해)을 하는 것에 어려운 대화를 전진시키는 힘이 있다. 나에게 해방감을 안겨줬던 ‘No’ 그 한 마디는 무필터였지만 무독성. 이번 워크숍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무독성 무필터의 존재.
‘전원 화상회의'에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사람들의 집을 살짝 엿보는 것과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뒷 배경에 비치는 생활감이 그 사람에 대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는데 요즘에는 화상회의용 서비스들이 배경을 블러 처리하거나 원하는 이미지로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서 그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더 후자에서 재미를 찾는다. 회의실에서 회의를 할 때는 다들 랩탑을 앞에 두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어서 말하는 사람을 종종 쳐다보기는 해도 보통 눈앞의 화면을 보는 데다 회의실 전체를 둘러보는 일은 흔치 않은데, ‘전원 화상회의'에서는 눈 앞에 있는 13인치 화면 속에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눈 앞의 화면에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일이 흔치 않지. 그러다 보니 말하는 사람을 보면서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띄게 못마땅한 표정, 듣고는 있나 싶은 심드렁한 표정, 별로 중요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사람을 지지하는듯한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 등등. 말보다 더 많은 정보가 숨어있다. 나도 남의 화면 속에서는 표정의 하나일 거고, 나처럼 화면 속 표정들을 관찰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 표정 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 내 모습도 표시되도록 설정해서 화상회의 중에 종종 거울 보듯 내 표정이 떠오른 네모를 확인하고는 한다. 거울 보는 걸 좋아해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관찰은 그만두고 내가 든 네모 속에서 이런 표정 저런 표정 지어보는데 정신이 1퍼센트 정도 팔리기도 하지만. 화면 속 늘어난 정보량뿐만 아니라 표정 관리하는 데 드는 에너지도 화상회의가 주는 피로감을 더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평소 내가 존경해왔던 팀의 리더들은 거의 하루 종일 회의만 하고 있을 게 뻔한데도 표정 관리를 잘해서 역시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도 내 표정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지 싶다.